웅장한 설산(雪山), 히말라야! ③
웅장한 설산(雪山), 히말라야! ③
  • 이철락 기자 science79@edunavi.kr
  • 승인 2019.11.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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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속에 발달한 물의 도시 포카라(Pokhara)
- 세계문화유산: 중세 도시 박터풀(Bhaktapur)/덜발 광장/보드나트

여행 6일째, 포카라의 아침은 맑고 16℃ 안팎의 쾌적한 날씨를 유지했다. 간밤에 상대적으로 호화로운 숙박 후 차와 과일을 먹으며 잠시 여유도 가졌다. 이날 하루는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 시내를 관광하기로 하였다.

봉고를 타고 맨 처음 간 곳은 페와호수(Fewa Lake) 남쪽 산꼭대기에 있는 일본산묘법사(日本山妙法寺)다. 입구에는 절의 이름과 함께 세계평화탑(World Peace Pagoda)이라는 간판이 함께 걸려있었다.

일본산묘법사(日本山妙法寺)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왼쪽)와 마차푸차레(중앙). 사진에서 한 발 더 밖으로 나가면 페와호수(Fewa Lake)뿐만 아니라 포카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일본산묘법사(日本山妙法寺)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왼쪽)와 마차푸차레(중앙). 사진에서 한 발 더 밖으로 나가면 페와호수(Fewa Lake)뿐만 아니라 포카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이철락 기자

 

이 절에 오르자 설산(雪山)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고,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페와호수뿐만 아니라 포카라 시가지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세계평화탑 앞마당에는 짙은 주황색 꽃들이 만발한 채 방문객들을 환영했다. 이곳에서 가끔 한국말을 건네는 낯선 네팔인들이 정겹다. 우리나라에서 산업근로자로 일했던 사람들이란다.

세계평화탑(World Peace Pagoda) 앞의 가을 정원
세계평화탑(World Peace Pagoda) 앞의 가을 정원. 이철락 기자

 

절 입구 찻집에서 아이스크림과 커피 한 잔 후, 데비의 폭포(Davi's fall)로 갔다. 폭포 이름은 1961년 스위스에서 여행 온 데비(Davi)라는 여인이 동굴 앞 폭포에서 갑자기 휩쓸렸는데, 온갖 노력 끝에 시체를 겨우 찾아, 이를 추모하기 위해 붙인 애칭이라고 한다. 출입구 간판에는 폭포 이름(Patale Chhango)보다 애칭(Devi’s Fall)이 더 큰 글씨로 적혀있었다.

데비의 폭포(Davi's fall) 간판에는 폭포 이름(Patale Chhango)보다 애칭(Devi’s Fall)이 더 큰 글씨로 적혀있었다.
데비의 폭포(Davi's fall) 간판에는 폭포 이름(Patale Chhango)보다 애칭(Devi’s Fall)이 더 큰 글씨로 적혀있었다. 이철락 기자

 

안으로 들어가니 기대보다 작은 규모의 폭포와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폭포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기보다 땅으로 꺼지는 형태로 보였다.

굽테스와르 동굴 입구에는 재래시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굽테스와르 동굴 입구에는 재래시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철락 기자

 

이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길 건너 굽테스와르 동굴(Gupteshwor Mahadev Cave)로 흘러 들어간다. 동굴은 폭포의 출구로 나와 도로를 건너 다시 들어가야 한다. 조형물이 조각된 입구의 원형 계단을 따라 내려간 동굴 안은 석회암이 녹아내린 작은 규모의 종유석, 조각상 및 사원이 있었다. 동굴 입구에는 재래시장도 조성되어 있었다.

점심으로 한국인 식당(山村 다람쥐)에서 비빔밥과 제육볶음을 먹고, 닭백숙을 저녁 식사로 주문해 놓았다.

오후엔 포카라 시내에서 가까운 국제산악박물관(International Mountain Museum)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에베레스트 등 정상 정복의 역사, 당시 사용된 산악 장비와 기후 변화에 따른 모습들을 전시해놓았다.

8,000m를 정복한 14명의 한국 산악인들(Korean 14 Eight-thousanders)의 업적을 기리는 코너와, 8,000m 이상의 7정상(summits), 14봉(peaks), 그랜드 슬램(에베레스트, 남극, 북극)을 달성한 고 박영석 씨의 코너도 특별히 마련되어 있었다.

산악인 고 박영석 씨 코너. 8,000m 이상의 7정상(summits), 14봉(peaks), 그랜드 슬램(에베레스트,  남극, 북극)을 정복한 진실한 탐험가(True Explorer), 유일한 인간(the only human being)이라고 적혀있었다.
산악인 고 박영석 씨 코너. 8,000m 이상의 7정상(summits), 14봉(peaks), 그랜드 슬램(에베레스트, 남극, 북극)을 정복한 진실한 탐험가(True Explorer), 유일한 인간(the only human being)이라고 적혀있었다. 이철락 기자

 

해 질 무렵엔 베그나스호수(Begnas Lake)를 찾았다. 평온하고 고요하며 페와호수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서도 설산(雪山) 마차푸차레(6,997m)가 흰 구름처럼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석양에 평온하고 고요한 호수에 여러 색깔의 소형보트들이 정박해 있다.
석양의 평온하고 고요한 호수에 여러 색깔의 소형보트들이 정박해 있다. 이철락 기자
해 질 무렵 베그나스호수(Begnas Lake)에서 마치 흰 구름처럼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설산(雪山)  마차푸차레(6,997m)를 볼 수 있었다.
해 질 무렵 베그나스호수(Begnas Lake)에서 마치 흰 구름처럼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설산(雪山) 마차푸차레(6,997m)를 볼 수 있었다. 이철락 기자

 

호수 둑에서 거리 연주자가 ‘싸랑기’라는 악기로 네팔의 국민가요인 레삼피리리를 연주하며 노래까지 불러 고요 속의 가을 흥취를 돋우었다.

호수 둑에서 거리 연주자가 네팔의 국민가요인 ‘레삼피리리’를 ‘싸랑기’라는 악기로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철락 기자
호수 둑에서 거리 연주자가 네팔의 국민가요인 ‘레삼피리리’를 ‘싸랑기’라는 악기로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철락 기자

 

밤 9시에는 21℃의 맑은 날씨 속에서 포카라 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거닐었다.

포카라 공항에서 72인승 예티 항공(Yeti Airlines)을 타고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으로 갔다.
포카라 공항에서 72인승 예티 항공(Yeti Airlines)을 타고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으로 갔다. 이철락 기자

 

여행 7일째(10월 27일) 일행은 수도 카트만두로 다시 가야 했다. 11시 1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봉고로 5분 만에 포카라 공항에 도착했지만, 예티 항공(Yeti Airlines)은 2시간 지연되어 오후 1시 15분에 이륙했다. 전광판이 교통정체로 지연되었음을 안내하였으나, 현지인들은 여기서 이륙 지연이 잦다고 말했다.

공항 전광판은 교통정체로 2시간 가까이 이륙이 지연되었음을 알렸다.
공항 전광판은 교통정체로 2시간 가까이 이륙이 지연되었음을 알렸다. 이철락 기자

 

72인승 경비행기는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까지 고도 3,800m를 유지하며 구름과 그 위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들 사이를 30분 동안 안정되게 날았다.

예티 항공의 72인승 경비행기는 카트만두 국제공항까지 구름과 그 위 히말라야의 봉우리들 사이를 안정되게 날아갔다.
예티 항공의 72인승 경비행기는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까지 구름과 그 위 히말라야의 봉우리들 사이를 안정되게 날아갔다. 이철락 기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천년왕국의 흔적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대도시다.

네팔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Hankook Sarang)에서 순두부와 된장찌개를 먹은 후,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스와얌부나트(Swayambhnath)로 갔다.

스와얌부나트(Swayambhnath)의 언덕 위에 오르면 흰 탑(스투파)에 그려진 부처님의 눈이 카트만두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지진으로 훼손된 문화재를 복구하느라 한창이었다.
스와얌부나트(Swayambhnath)의 언덕 위에 오르면 흰 탑(스투파)에 그려진 부처님의 눈이 카트만두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지진으로 훼손된 문화재를 복구하느라 한창이었다. 이철락 기자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네팔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이 사원에서 맨 먼저 일행을 맞이한 것은 원숭이 떼였다. 언덕 위로 올라가자 흰 탑(스투파)에 그려진 부처님의 눈이 카트만두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2015년 7.8의 강진으로 심하게 훼손된 문화재를 복구하느라 한창이었다.

한 관광객이 순례자를 따라 마니차(摩尼車)를 돌려보고 있다.
한 관광객이 순례자를 따라 마니차(摩尼車)를 돌려보고 있다. 이철락 기자

 

해 질 무렵, 스와얌부나트에서 바라본 설산 거네스(Ganesh)가 석양을 받아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해 질 무렵, 스와얌부나트에서 바라본 설산 거네스(Ganesh)가 석양을 받아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이철락 기자

 

관광객들은 기도하는 현지인들을 따라 마니차(摩尼車)를 돌려보기도 했고, 해질 무렵이 되자 멀리서 설산 거네스(Ganesh)가 석양을 받아 황금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사원 안에는 룽거라는 오색 깃발이 곳곳에서 바람에 나부꼈다.

스와얌부나트(위)와 덜발 광장(아래) 입장권
스와얌부나트(위)와 덜발 광장(아래) 입장권. 이철락 기자

 

사원을 나와, 17세기 옛 왕궁 앞 광장을 일컫는 덜발 광장(Durbar square)으로 갔다. 1.000루피(약 1만 원)를 주고 입장하였는데, 특히 외국인에게는 공식적으로 비싸게 받았다. 광장에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재래시장인 어산시장(Asan Bazaar)이 터멜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티하르(빛)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시장은 인산인해의 인파로 무질서했다. 중세 분위기가 나는 좁은 골목에는 생필품, 고기, 야채, 공산품 등을 파는 가게가 빽빽하게 줄지어있었다. 상인들은 가게마다 렁글리(디까라는 바르는 물감과 꽃으로 장식한 촛불을 상가 입구에 켜놓음)를 장식하고 촛불을 켜서 복을 기원하였다. 시장은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모습을 하였지만, 몹시 불결해 보였다. 육류 가게는 고기를 냉장고에 넣지도 않은 채 매연이 심한 거리에서 팔고 있었다. 곧 팔리지 않으면 부패할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디까라는 물감을 파는 상인, 사람들은 이 물감을 사서 기도 대상에 칠하며 복을 기원하였다.
디까라는 물감을 파는 상인, 사람들은 이 물감을 사서 기도 대상에 칠하며 복을 기원하였다. 이철락 기자

 

저녁에 일행은 어산시장을 지나며 터멜의 숙소까지 걸어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 옛 말라 왕조의 영화를 누렸던 박터풀(Bhaktapur) 구왕궁을 방문하였다. 터멜 숙소에서 봉고로 약 30분 정도 소요되었고 입장료는 1,500루피(약 15,000원)였다. 입구에서 300루피(약 3,000원)짜리 배낭을 팔았는 데 가격 대비 품질이 좋아 인기가 높았다.

1,769년 나라얀 샤(Narayan Shah) 왕조에 멸망한 박터풀(Bhaktapur)은 왕궁의 규모가 웅장했으며, 태곳적 경관을 아직 많이 보존하고 있었다. 옛 왕궁과 사원들 사이에는 광장들이 있었다.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으며, 상인들이 바닥에 과일을 쌓아놓고 팔았다.

터우마디광장(Taumadhi Square). 이철락 기자
터우마디광장(Taumadhi Square). 이철락 기자
덜발 광장(Durbar Square). 이철락 기자
덜발 광장(Durbar Square). 이철락 기자
광장의 인파 속에서 상인들이 바닥에 과일을 쌓아놓고 팔았다.
광장의 인파 속에서 상인들이 바닥에 과일을 쌓아놓고 팔았다. 이철락 기자

 

옛 왕궁 속의 일상은 분주한 모습이었다. 우물에서 물 긷는 중년, 손빨래하는 아낙네들, 마당에서 다 큰 딸아이를 발가벗기고 목욕시키는 부인, 물레 돌리는 노파, 탈곡한 곡식을 널어 말리는 농부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옛 모습을 되돌려 보는 듯했다. 곳곳에서 재건축이 진행되고, 수많은 오토바이가 뿜어내는 매연은 마을 전체의 공기를 심하게 오염시키기도 했다.

끈을 매단 물통을 우물에 드리워 물을 퍼 올리고 있다.
끈을 매단 물통을 우물에 드리워 물을 퍼 올리고 있다. 이철락 기자
집 앞마당에서 아낙네들이 손빨래하고 있다.
집 앞마당에서 아낙네들이 손빨래하고 있다. 이철락 기자
노파가 사진을 위해 물레 돌리는 모습을 웃으며 시연해준다.
노파가 사진을 위해 물레 돌리는 모습을 웃으며 시연해준다. 이철락 기자
곡식을 널어 말리기 위해 농부가 벼를 고르고 있다.
곡식을 널어 말리기 위해 농부가 벼를 고르고 있다. 이철락 기자

 

필자는 네팔의 대표적 관광지 셋을 꼽으라면 히말라야, 페와호수, 그리고 박터풀(Bhaktapur)을 꼽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후엔 네팔에서 가장 높은 사리탑인 보드나트(Bodhnath)를 먼저 찾아 한 시간 정도 둘러보았다. 반구형 기단 위에 세워진 첨탑의 높이가 38m에 이르는 큰 탑(스투파)으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 돔과 정상부 사이에 깨달음을 얻기 위한 13개의 단계를 층으로 표현하였다. 보드나트 이름은 Bodh(깨달음) Nath(사찰)의 뜻이며, 네팔 속의 작은 티베트라고 할 정도로 티베트인들이 수 세기에 걸쳐 살아온 곳이라고 하였다.

보드나트(Bodhnath)는 반구형 기단 위 첨탑의 높이가 38m에 이르는 큰 스투파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
보드나트(Bodhnath)는 반구형 기단 위 첨탑의 높이가 38m에 이르는 큰 스투파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 이철락 기자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는 스투파 주변에서 사람들이 승려의 설법을 듣는가 하면, 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탑(스투파) 주위에서 한 승려의 설법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탑(스투파) 주위에서 한 승려의 설법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이철락 기자

 

이제 네팔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남았다. 네팔 힌두교 최대의 성지인 파슈파니나트(Pashupatinath) 힌두사원을 찾았다. 파슈파니나트는 Pashu(생명체) Pati(존엄한 존재)의 뜻으로 시바신에게 봉헌된 사원이라고 했다. 힌두인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바그마티 강변에 서기 477년에 처음 지어졌고, 1,697년 말라 왕조 때 현재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UNESCO는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바그마티 강변에 네팔 힌두교 최대 성지인 파슈파티나트 사원이 세워져 있다.
바그마티 강변에 네팔 힌두교 최대 성지인 파슈파티나트 사원이 세워져 있다. 이철락 기자

 

순례객뿐만 아니라, 1,000루피(약 1만 원)의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사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많았다. 사원 안에는 생명체 창조의 신인 시바신의 상징물이 곳곳에 조각되어 있었다. 신성해야 할 상징물에는 사두들이 기도하면서 형형색색의 물감(디까)을 마구 칠해놓았다. 유물들 사이로 개와 원숭이가 뛰어다니며 아무렇게나 배설한 곳도 있어 안타까웠다.

시바(생명체 창조의 신)의 링가(男根)와 링가를 받친 요니(女陰)의 상징물에 기도하면서 디까라는 물감을 칠해 놓았다. 이철락 기자
시바(생명체 창조의 신)의 링가(男根)와 링가를 받친 요니(女陰)의 상징물에 기도하면서 디까라는 물감을 칠해 놓았다. 이철락 기자

 

맞은편 강둑에 늘어선 화장터(Ghat)에서는 시신들이 연기를 피우며 태워지고, 대기하는 시신들도 있었다. 강변에 1시간 이상 서 있는 동안 울부짖는 유족의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사원을 세웠을 당시 맑고 깨끗하게 흘렀을 바그마티강은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으며, 강에서 목욕하거나 빨래하는 사람도 이 시간에는 보이지 않았다.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의 맞은편 강변에는 화장이 진행되고 있었고, 강물은 맑지 않았다.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의 맞은편 강변에는 화장이 진행되고 있었고, 강물은 맑지 않았다. 이철락 기자

 

8박 9일이라는 짧은 기간의 도보여행(Trekking)이었다.

네팔은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히말라야 설산, 산장의 순박한 사람들, 빙하가 녹아 만든 아름다운 호수들, 그리고 잘 보존되거나 보수가 한창인 옛 왕궁 등 볼거리가 넘쳐났지만, 사회기반시설의 확보와 위생적인 측면에서 아직 낙후된 곳들이 많이 남아있어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이번 도보여행의 기획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안내해준 네팔 한네기술전문학교(KNIT) 우창호 선생(전 호산고 교장)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