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청춘들의 사랑을 받은 영화 ‘맨발의 청춘'
60년대 청춘들의 사랑을 받은 영화 ‘맨발의 청춘'
  • 김병두 기자
  • 승인 2019.11.08 11: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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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의 딸과 고아로 자란 건달 청년의 신분을 초월한 청춘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1964년 2월 29일 서울의 아카데미 극장에서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신성일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맨발의 청춘”이 개봉되었다. 줄거리는 외교관의 딸인 요안나와 고아로 자란 거리의 깡패인 두수가 신분을 초월해 사랑을 하지만 요안나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서 딸을 아버지가 근무하는 외국으로 보내려 한다.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 이승을 하직하기로 하고 시골의 농가 창고에서 음독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장례식 날 요안나의 시신은 꽃으로 장식한 영구차에 실려가지만 두수의 시신은 맨발이 드러난 채 거적에 덮여서 리어카에 실려가는 장면은 신분의 차이를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특히 아가리가 구두를 벗어 두수의 맨발에 신겨주는 장면은 많은 젊은이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영화의 원작은 나카히라 코우의 “진탕투성이의 순정”을 서윤성이 각색하였다. 당시 일본 영화 표절 논란도 있었지만 청춘스타인 신성일과 엄앵란 주연으로 많은 화제가 되었다.

"맨발의 청춘" 영화 포스터 "영화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전시회에서. 김병두 기자
"맨발의 청춘" 영화 포스터 "영화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전시회에서. 김병두 기자

영화가 개봉되자 아카데미 극장 앞에는 아침부터 표를 사려는 관객들이 덕수궁까지 줄을 섰으며 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영화가 크게 히트하자 1964년 김기덕 감독은 “맨발의 청춘” 속편인 “떠날 때는 말없이”를 만들었다. 그 후 신성일과 엄앵란은 많은 영화에서 주연으로 출연하여 연인으로 발전하고 워커힐에서 수천 명의 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이 영화는 트위스트 김의 데뷔작으로 두수를 형님으로 모시는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그 후 많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감초 역할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가수 최희준이 부른 영화 주제가 “맨발의 청춘”은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으로 크게 히트하였으며 제2회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신성일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를 졸업하고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의 바른이 역으로 데뷔하여 지금까지 524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한국 영화의 간판스타가 되었으며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9년 한국 영화배우협회 회장과 이사장, 제16대 국회의원,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폐암으로 2018년 11월 4일 세상을 떠났다.

엄앵란은 연극배우 노재신의 딸로 숙명여대 재학중 “단종애사”로 데뷔하였으며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신성일과 결혼 후 영화계를 은퇴하였으며 지금은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1961년 영화 “5인의 해병”의 감독으로 데뷔하여 “떠날 때는 말없이” “섬 마을 선생” “타인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명동 부르스“ 등 많은 영화의 감독을 하고 대종상영화제 심사 위원장과 서울예술대학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9월 7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맨발의 청춘은 그 후 1979년 김수형 감독이 이덕화 임예진 손창호 주연의 “맨발의 청춘 77”. 1986년 김응천 감독이 진유영 전세영 김주승 주연의 “맨발의 청춘 87”로 리메이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