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산 상엿집’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산 상엿집’
  • 이상유 기자
  • 승인 2019.11.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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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양 무학산 중턱에 300년 된 상엿집과 문서 및 장례도구 보관
- (사) 나라얼연구소 조원경 이사장과 황영례 소장의 헌신적 노력
- 경산시, 무학산 상례공원 조성 박차
하양 무학산 중턱에 있는 경산 상엿집과 사당의 모습   이상유 기자
하양 무학산 중턱에 있는 경산 상엿집과 사당의 모습. 이상유 기자

경북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 해발 350m의 무학산 중턱에는 우리나라 전통 상례 유물로는 유일하게 국가 민속문화재(중요 민속자료 제 266호)로 지정된 ‘경산 상엿집’이 있다.

상여집이란 장례 때 시신을 운반하는 도구인 상여와 그와 관련된 도구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을 말한다. ‘경산 상엿집’에는 현재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300년 된 상엿집과 문서 19점을 비롯해 상엿집 안에 들어 있는 200여 점의 자료, 200년 된 또 다른 상엿집 한 채, 150년 된 사당 한 칸이 있다. 그 외에 만주 상여를 비롯한 10 틀의 상여가 보관되어 있으며 망자의 혼을 운반하던 영여(靈與)20점이 있고 기타 나무로 된 관련자료 2,000점과 문서 200점이 보관되어 있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66호인 '경산 상엿집'의 모습    이상유 기자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66호인 '경산 상엿집'의 모습. 이상유 기자

현재의 ‘경산 상엿집’이 있기까지 하양 무학로 교회 목사이자 (사) 나라얼연구소 이사장인 조원경(남, 62세) 씨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신학박사이자 동양철학 박사이기도 한 조원경 이사장은 2009년 철거 위기에 놓인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의 상엿집 현장을 방문했다. 그때 전통 상례 문화를 보존하고 이를 통해 민족의 얼을 살리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판단하고 영천의 상엿집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왔다고 한다. 그 후 상엿집과 전통 상례 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황영례 박사 등 많은 사람들과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2010년 8월 30일 ‘경산 상엿집’이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266호로 지정받게 되었다.

조원경 목사가 설립한 나라 얼 연구소에서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총 141회의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으며 특히, 대한민국 유일의 한국 전통 상례 문화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를 올해까지 6회째 개최했다.

무학산 중턱에 있는 사) 나라 얼 연구소 전경.   이상유 기자
무학산 중턱에 있는 (사) 나라얼연구소 전경. 이상유 기자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노년 세대들이라면 누구나 상엿집과 상여 행렬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동네의 외떨어진 곳에 지어져 있던 상엿집은 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유교적인 전통 장례식이 치러졌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여러 가지 도구와 절차가 필요했으며 그중에서도 망자의 시신을 운반하는 상여와 그에 따르는 절차가 가장 중요했다. 장례절차에 따른 긴 상여 행렬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행사였다. 망자의 혼을 모시는 영여를 앞세우고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선소리꾼의 요령과 선창에 따라 ‘어화 넘차 어화’의 후렴구를 외치며 행진했다. 상여 뒤를 통곡하며 따르던 상주들의 모습과 만장을 펄럭이며 매장지로 향하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장엄하고 비장한 풍경이었다. 동네마다 상여계를 만들어 힘을 모아 장례를 치러내고 슬픔을 같이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장례행렬은 1970-80년대 까지만 해도 시골 마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여 오늘날의 장례문화는 죽음에 대한 엄숙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병원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영구차라는 쇳덩이를 통해 시신을 운반하고 전깃불로 화장하여 유리나 대리석으로 된 함에 유골을 보관하거나 강물에 뿌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삭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영여, 상여 및 각종 장례도구가 상엿집 안에 보관 되어 있다.   이상유 기자
영여, 상여 및 각종 장례도구가 상엿집 안에 보관 되어 있다. 이상유 기자
상엿집에 보관중이 상여의 모습.   이상유 기자
상엿집에 보관중인 상여의 모습. 이상유 기자
나라얼 연구소에 보관중인 만주 상여(좌측).  이상유 기자
나라얼 연구소에 보관중인 만주 상여(좌측). 이상유 기자

우리의 전통장례 의식은 육신이 죽었기에 보내는 슬픈 이별이기는 하지만 정신은 영원히 가족과 함께 머무르는 생명 보존의 정신을 담고 있었다. 유교의 상례에서 죽은 후에 혼으로 돌아와 머무르는 ‘사당’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육신이 어디에 있든지 육신 안에 있던 조상으로부터 받은 불변의 정신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은 시간과 공간이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은 죽어 눈으로 더 이상 볼 수 없어도 혼은 계속 살아있다고 하여 삶과 죽음을 연속성으로 보았다.

우리나라의 전통 상례 문화는 부모에 대한 효(孝), 망자에 대한 예의, 마을 공동체 의식이 어우러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소중한 유산이며 후손들을 위한 교육적 측면에서도 반드시 보존, 전승되어야 할 것이다.

망자의 혼을 모시던 150년 된 사당.   이상유 기자
망자의 혼을 모시던 150년 된 사당. 이상유 기자
상엿집을 지키던 '고지기'가 살던 집.   이상유 기자
상엿집을 지키던 '고지기'가 살던 집. 이상유 기자

조원경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생명존중 사상은 조상의 ‘얼’에 있으며 조상의 얼이 담긴 대표적인 문화가 전통 상례 문화다. 한국적인 정신문화를 세계정신으로 승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우리의 얼이 담긴 상·제례 문화의 원형을 복원하고 의미를 찾아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여 전통 상례를 통한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최종 목표다”라고 밝혔다.

경산시에서는 2011년 경산 상례 공원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2019년 현재 무학산 상례 공원 조성을 위한 타당성 용역에 들어갔다고 한다. 멀지 않아 ‘경산 상엿집’이 경산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무학산을 내려왔다. 좋은 말씀을 들려주신 조원경 이사장님과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신 최정미 팀장님께 감사드린다.

국가민속문화재 지정서.  이상유 기자
국가민속문화재 지정서. 이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