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오정희著)
유년의 뜰(오정희著)
  • 김수남 기자
  • 승인 2019.10.30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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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뜰》은 1981년에 나온 오정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소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전쟁의 상처와 가족의 고통, 아버지의 부재에 의한 가족의 해체, 생활의 변화 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와 성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겨울 뜸부기''저녁의 게임', 아내이자 어머니의 일상을 그린 '꿈꾸는 새''비어있는 들', '별사(別辭)', '어둠의 집' 8개의 단편과 '작가 후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의 유년시절 슬픈 상흔들이 절절히 묘사되어 있으며 이 시기에서 중년에 이르는 여성 주인공 내면을,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 ''의 눈으로 당시를 회상하며 세대의 흐름으로 담아냈다.

 

함석지붕 여인숙 회충약 신작로 눈깔사탕 양갈보 빼딱구두 등의 단어와 1970년대  밤 시간에 사이렌이 울리면 불을 꺼야 했던 야간에 등화관제 훈련의 어렴풋한 기억에서 그 시대적 배경도 한눈에 읽혔다.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가는 아버지에게 ''곧 돌아와야 해요, 이 근방에서 자리 잡고 있을게요'' 라던 어머니... 그러나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화장시간은 자꾸 길어지고.....

언젠가 이 장면을'TV문학관' 에서 본 기억도 난다.

 

'유년의 뜰''중국인 거리'는 어린아이 시선이어서인지 가볍게 읽었지만, 나머지 단편들은 무게감에 좀 힘들기도 했다. 특히 낚시를 떠난 남편의 정처 없는 배회와 죽음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해독도 혼란스럽고 묘한 슬픔도 전해왔다

 

작가 오정희의 작품들은 필사로도 좋고, 문학 글쓰기에선 '묘사' 의 귀재라고 들었던 것 처럼 정말로 대단하다. 그려지는 장면의 생생한 묘사와 작은 움직임, 등장인물의 심리상태까지 언어의 마술사다운 '묘사'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특히 평온한 일상을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불안과 불길함 같은 것을 보여주는 섬세함은 이 소설의 중요성이기도 하다

 

전쟁과 굶주림, 견뎌내야만 하는 지리한 일상, 그 시절을 살아내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것이 바로 우리 언니들 세대 같아 정신없이 몰입은 됐으나 읽는 내내 우울하고 편치는 않았다.

이 책이 1981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그 해에 필자 역시 결혼할 무렵이며, 책장을 넘긴 기억이 난다. 우리 사회가 초고속 경제성장과 정치적 혼란을 동시에 겪은 때이다. 30년도 더 넘은 지금, 다시 이 책을 폈다. 경제나 기술이 진보했듯 우리 삶의 모습들도 과연?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때때로 우리의 삶이 내팽개쳐진 기분에 갑갑한 심정이다.

그래도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와 한국문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많은 구절들이 오래도록 아른거린다.

저녁 햇빛이 칼처럼 방안에 깊숙이 꽂힐 즈음이면

인생이란..... 나는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사랑인가 성인가 소멸인가를 자문하곤 했다

 

 

오정희의 '유년의 뜰'을 덮으며 내 '유년의 뜰' 을 길어 올리기 시작했다.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풍성한 나의 유년기를 꼭 써보리라 꿈꾸면서.....

 

어렸을 때 어두운 한국문학을 많이 읽어서일까 음악을 들어도 우울한 음색을 좋아하고

그래서 딸아이도 자주 불만을 토로했다. ''이렇게 밝은 엄마인데 왜 어두침침한 음만 좋아하냐고.....''

 

'작가의 말' 도 너무 맘에 든다.

''지나간 시간들, 그리고 현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강할 때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위안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