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노사모와 대깨문
(32) 노사모와 대깨문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10.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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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는 “2000년 4월 13일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의 후보로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허태열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망언으로 인해 지역주의를 넘지 못하고 낙선한 노무현을 안타깝게 여겼던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을 통해서 만들어낸 국내 최초의 정치인 지지 단체”였다.(나무위키) 이렇게 시작된 정치인 펜클럽 ‘노사모’는 ‘노무현과 함께 동서화합에 나선다.’는 활동원칙으로 시민사회운동을 계속해 나갔다.(영화, 《노무현입니다》) 명칭은 물론, 활동원칙도 소박했던 정치 펜클럽 노사모는 2019년 9월 23일,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서버와 함께 노무현 재단에 기증하고 약 9년 반 동안의 활동을 마감했다.

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노사모’라는 명칭은 한 사람의 정치가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소박했고, ‘노무현과 함께 동서화합에 나선다.’ 라는 활동원칙 또한 세상을 밝게 하려는 선의(善意)였다. 이와 같이 노사모가 선량한 시민들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종말을 고했다.

요즈음 또 하나의 정치인 펜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현재 진행형의 정치 펜클럽이 그것이다. 누가 작명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감도 의미도 그리 좋지 않다.

‘대깨문’은 2009년 7월에 개설 후 2019년 7월 9일 기준 약 78만 명의 회원 수를 보유하고 있는 《다음》의 여성 전용 카페 ‘여성시대(여시)’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시’의 유저들은 20~30대 여성들이고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면서 엄격하게 입회 심사하는 카페이다.

2016년 문재인 대세론이 확산되었던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과 '사대문'(사실 대통령은 문대인)에 이어 지지율 혼전이 이뤄지던 선거전 때의 ‘투대문’(투표하면 대통령은 문재인)이 유행어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문재인 극성 지지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깨문’이 나오게 되었다.

요즈음 대깨문은 정반대의 의미로 통용된다고 한다. ‘대가리 깨져가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 ‘대가리가 깨졌으니까 지지하는 거다’와 같은 조롱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작 이 명칭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고, 이들을 반대하는 측에서 정치 현실에 비추어서 그들을 비하할 때 사용된다고 한다.

‘대깨문’이라는 용어는 좋은 마음으로 무언가 건설하려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과격하고 파괴적인 뜻이 들어있다. ‘대가리가 깨져도’라는 말은 ‘죽음을 무릅쓰고’ 라는 말을 변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의 의미는 다르다. 후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라는 단호한 결의가 숨어있는 능동적인 정신이 내포한다. 죽음을 불사하지만, 살아서 승리를 쟁취한다는 긍정적인 용기를 북돋우는 힘이 들어있는 말이다. 전자의 ‘대가리가 깨져도’는 단호한 결의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상황’과 ‘수동적인 패배’를 암시한다. 대가리 깨져서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깨문의 작명자는 용어의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고 강한 이미지만 염두에 두었는지 모른다.

말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소년원에 수감된 한 청소년에게 ‘너는 왜 여기 들어왔느냐?’ 라고 질문해 보았다. 그 대답은 간단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감옥에나 갈 놈!’ 이라고 욕설을 날마다 들으며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 왔지요.’ 라고 했다. ‘감옥에나 갈 놈!’이라는 말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대깨문’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계속 사용하지 않고 버리게 된 것도 말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대깨문’이라는 용어는 소위 진보 진영에서 좌파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고 있다. 스스로 버릴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