倒行逆施(도행역시)
倒行逆施(도행역시)
  • 신문수 기자
  • 승인 2019.10.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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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꾸로 행하고 거슬러 시행함

- 道理(도리)에 순종하지 않고 일을 행하여 常道(상도)를 벗어나서 일을 억지로 함 

ㆍ倒(도) : 1.넘어지다 2.거꾸로하다 3.거스르다 倒産(도산) 倒錯(도착) 倒置(도치) 打倒(타도)

ㆍ行(행) : 1.다니다 2.걷다 3.길 4.여장 5.행서 行樂(행락) 行爲(행위) 實行(실행) 洋行(양행)

ㆍ逆(역) : 1.거스르다 2.어긋나다 3.배반하다 4.맞이하다 逆境(역경) 逆徒(역도) 逆流(역류) 逆謀(역모) 逆說(역설) 逆情(역정) 反逆(반역)

ㆍ施(시) : 1.베풀다 2.주다 3.퍼지다 4.자랑하다 5옮기다 施工(시공) 施政(시정) 實施(실시)

 

춘추 시대의 일이다. 楚(초)의 伍子胥(오자서)의 일가인 平王(평왕)은 박해를 받아 아버지와 형이 죽음을 당했다. 그는 스스로 유랑자가 되어 吳(오)로 도망가기로 했다. 도중에 친구인 申包胥(신포서)를 만났다. 그가 「楚(초)를 멸하여 원수를 갚아 보이겠다」라고 말하자 包胥(포서)는 「그러면 나는 기필코 楚(초)를 구해 보이겠다」라고 말하고 두 사람은 결별하였다. 도중에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쨌든 오나라에 들어가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그는 吳(오)에서 大夫(대부)로 출세하여 吳王 闔閭(오왕 합려)에게 楚(초)를 공격하자고 설득하여 승인하도록 했다.

출병한 吳(오)군은 진격을 계속하여 순식간에 楚都(초도)인 郢(영)에 돌입했다. 平王(평왕)은 이미죽 고 후사인 昭王(소왕)은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서 행방을 알 수 없었다. 평왕을 붙잡을수 없게 된 자서는 화를 참지 못하여 평왕의 묘를 파헤쳐 그 시체를 3백번이나 채찍질하고 뼈를 부수어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았다. 계속 자서는 부하에게 명해서 소왕의 행방을 탐색시켰지만 그때 친구인 신포서가 편지를 보내어 「자네가 하는 행동은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하고 꾸짖었다. 그에 대해 자서는 회답을 썼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적기 때문에 상식에 어긋나는일 倒行逆施(도행역시)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포서는 秦(진)으로 가서, 楚(초)에 구원군을 내보낼 것을 부탁했다. 그는 7일 밤낮을 울며 진정하여 진의 哀公(애공)도 그 열성에 감복하여 출병을 허락했다. 秦軍(진군)이 출병 했을때 오의 국내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자서는 하는수 없이 소왕의 추적과 진군의 반격을 포기하고 병사를 되돌려 국내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수년 후 吳王 闔閭(오왕 합려)가 죽고 아들인 夫差(부차)가 즉위하여 越(월)을 공격하여 勾踐(구천)을 크게 쳐부수었다. 자서는 단숨에 월을 멸망하도록 역설하였으나 부차는 승인하지 않았다. 이후 자서는 부차에게 소외당하고 동료인 伯否(백부)의 중상모략도 더해져 결국 자해를 명령받아 부차를 저주하면서 자살하고 말았다.

 

順理(순리)란 무엇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뜻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모 장관의 임명을 두고 약 2개월간 심한 갈등을 겪었다. 극명하게 갈라진 국민여론을 통합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이에 편성하여 자기들에게 유리한 여론만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특히 원만한 국정 운영의 책임이 있는 정부 여당의 행태는 심히 우려스럽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장본인은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이 사태에 대해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치권은 현 시국을 我田引水(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倒行逆施"(도행역시)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