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살다간 ‘전혜린’의 문학세계(3)
불꽃처럼 살다간 ‘전혜린’의 문학세계(3)
  • 장기성 기자
  • 승인 2019.10.15 18:01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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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의 문학세계는 이국(異國)취향, 평범한 인간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 세속적인 것에 대한 혐오, 죽음에 대한 동경과 허무의식,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이다.
뮌헨의 랜드마크 '프라우엔 교회'는 1488년에 완공되었다.전혜린이 뮌헨 수학시절 d이 교회 꼭대기에 올라, 바이에른의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저 먼 곳을 향한 동경' 의 꿈을 키운 곳이기도하다. Daum Image
프라우엔 교회: 뮌헨의 랜드마크 '프라우엔 교회'는 1488년에 완공되었다.전혜린이 뮌헨대학 수학시절 이 교회 꼭대기에 올라, 바이에른의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저 먼 곳을 향한 동경' 의 꿈을 키운 곳이기도하다. Daum Image

전혜린의 글쓰기는 독일 유학시절인 58년 3월 ‘한국일보’에서 현상공모했던 ‘해외 유학생의 편지’에 「뮌헨의 몽마르트」가 입선되고, 같은 해 ‘사상계’ 11월호에 「회색의 포도(鋪道)와 레몬빛 가스등(가스燈)」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수필가로 활동이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귀국 후 전혜린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독일문학을 소개하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의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전혜린은 작품을 통해 당시 대중들을 미국 중심의 심상(心象)자리에서 벗어나 유럽대륙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전혜린은 1960년대 한국문단에서 주변인에 불과했다. 1950년대부터 한국문단은 기성문단의 권력화로 인해 순수문예지 등단(登壇)에 ‘추천제도’를 강화하였고, 문단에 등단하려면 소위 유명문인의 추천 없이는 불가능하던 시절이다. 그러자 젊은 문학 지망생들은 문단등단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와 서울대 문리대 출신 동인지 「산문시대」를 비롯한 동인지 활동이 등단제도로 역할하기에 이른다. 이런 한국문단에서 전혜린과 같은 비범한 여성지식인을 수용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 관념적 성향과 엘리트여성이라는 자의식이 다른 기성작가들과 거리를 두게 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혜린은 제한된 한국문단의 장에서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야 대중의 큰 호응을 얻으며 ’비운의 천재 작가‘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물론 사후에 기성문단 세력의 보증이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예로 1966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전혜린을 추모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획, 재구성된 것이다. 김화영(고려대 교수)이 책의 표지와 편집, 구성은 물론 교정까지 맡았다. 특히 이 책 서문에 당시 신진 평론가이자 문단권력을 확보한 이어령(문학평론가・이대교수)의 추모사를 실어 전혜린의 글을 확고히 보증 받게 한 것도 기획에 의한 것이었다.

곧이어 그가 재직하던 성균관대 독문학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전혜린 기념 출판위원회」가 전혜린이 생존 시에 쓴 일기, 편지, 평론, 번역, 수필 등을 모아 「전혜린 전집」 총 4권을 발간하자 전혜린의 인기는 더욱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70년대까지 전혜린 읽기는 계속되었고, 박남수(시인), 김남조(시인, 숙명여대 교수) 같은 당대 문단을 이끌던 지식인과 문인들의 회고 및 추모의 글모음으로 엮어지거나,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과 같은 학자가 그를 소개하면서 전혜린의 문학성이 새롭게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윤식 교수는 ‘전혜린론’을 두 편이나 썼는데, 특히 25명의 근대작가 가운데 25번째 ‘작가’로 전혜린을 호명했다. 더욱이 그의 존재감은 일반대중의 흡입력 뿐 아니라 지식인 그룹에서도 가담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제는 단순히 호기심에 근거한 신비스런 작가는 아니라는 뜻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이후 82년을 기점으로 이덕희(문학평론가)와 정공채(시인)가 쓴 ’전혜린 평전‘이 각각 출간되면서 전혜린을 둘러싼 언론의 조명이 또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게다가 눈에 띄는 것은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쇄(刷)를 거듭하면서 지금껏 대중의 베스트셀러로 읽히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를 넘어서자 교수나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 ‘전혜린’의 학술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예로 서강대 장순란(2003), 단국대 이태숙(2017), 원광대 정은경(2014), 중앙대 유진홍(2001),서강대 박숙자(2013),서은주(2004),박상미(2015),김기란(2010),김양선(2010),진성희(2008) 등이 대표적 학자들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혜린의 문학세계로 들어가 보자. 전혜린의 수필과 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화화된 일종의 ‘낭만주의’의 결정체이다. 낭만주의는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동경, 이성과 계몽이 아니라 감성과 상상력을 중심에 두며, 규율과 형식 그리고 현실을 초월한 자유분방함과 비현실, 죽음에 대한 동경 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두 권의 유고집에서 두드러지는 그의 문학적 특성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이국(異國)취향’이다. 아래의  이미지에서 보여주듯  '슈바빙'을 이국적이며 환상적 거리로  수필 곳곳에 묘사하고있다. 전후 50년대  척박한 한국 현실이 그의 뇌리에 남아있었으니 오죽하랴 .

‘회색 안개와 포도, 레몬빛 가스등과 뮌헨, 자유, 모험, 소세지와 맥주 등 슈바빙 거리로 대표되는 낭만적 이국풍경은 ’전혜린적인 것‘의 중요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뮌헨을 보는 전혜린의 시선은 호기심과 동경에 찬 ’여행자‘와 ’이방인‘의 그것이며, 그로인해 ’슈바빙’(Schwabing)을 이국적이며 환상적 거리로 만들었다
슈바빙 거리: ‘회색 안개와 포도(鋪道), 레몬빛 가스등(燈)과 뮌헨, 자유, 모험, 소세지와 맥주 등 슈바빙 거리로 대표되는 낭만적 이국풍경은 ’전혜린적인 것‘의 중요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뮌헨을 보는 전혜린의 시선은 호기심과 동경에 찬 ’여행자‘와 ’이방인‘의 그것이며, 그로인해 ’슈바빙’(Schwabing)을 이국적이며 환상적 거리로 만들었다. Daum Image

둘째로는 ‘죽어도 평범한 인간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녀의 일기에 ‘격정적으로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을 적고 있으며, 이런 ‘순간의 지속’에 대한 열망을 수필과 일기의 곳곳에 표현하고 있다. 범상(凡常)은 그에게 하찮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셋째로 전혜린은 정신에 생의 가치를 두고, 물질, 육체를 비롯한 일체의 일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혐오하고 있다는 점이다. 6.25전쟁, 분단, 4.19, 5.16을 체험했던 전혜린이 어느 작품에서도 이런 한국의 현실에 대해 글로써 형상화하고 있지 않다. 세속과 일상에 대한 강박적 혐오로 보인다.

넷째로는 ‘죽음에 대한 동경과 허무의식’이다. 수필에서 보면 “여름의 모든 색채와 열기가 가고 난 뒤에 냉기와 검은 빛과 조락(凋落)은 나에겐 너무나 죽음의 유혹을 보내온다”라며 ‘가을에 앓는 존재의 질병’으로 표현하고 있다. 죽음이 늘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다섯째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과 감정이입’이다. 전혜린은 수필이나 일기에서 사랑의 허무감과 변덕스러움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표출하고 있으나, 이것은 곧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갈망의 다른 표현으로 읽힌다. 이상의 5가지가 전혜린의 글쓰기의 전형적 소재이며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전혜린은 특이한 여성이었다. 우리는 이 특이성 속에서 그의 본질을 파악해야할 것이다. 그의 정신적 비범성이나, 광범위에 걸친 지적 호기심은 그의 수필과 일기(日記)를 통해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니 그의 내면적인 고립감, 세상과의 깊은 부조화, 완전에 대한 과대 망상적인 집착은 사후에 공개된 일기가 아니었던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 전체를 볼 때, 자신은 남과 다르다는 것과 평범한 것에 대한 경멸감들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자유로우려는 욕구와 그걸 배반하려는 이중적 행위, 이 모든 상반된 내적 욕구로 인해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며 그걸 극복하고 조화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를 바탕에 두고 그의 문학세계를 바라봐야 올바른 접근법이 될 것이다. 그의 일생은 이와 같은 극심한 내적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가 일상에서 두려워한 것은 무엇보다도 ‘권태(倦怠)’였다. 이 ‘권태’란 놈을 처치하기 위해서라면 그는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았다. 예로 전혜린은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금했던 술을 거리낌 없이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음주, 흡연은 당시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세수는 하지 않고 눈 화장만 한다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립스틱을 바른다거나, 맨발로 길을 걷는 등 남의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파격적 행동은 권태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그의 표현법이 아닐까. 5-60년 당시로선 우리 문화가 이런 기이한 취향이나 습성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협소했고 거부감이 일기도 했으리라. 그로 인해 또한 늘 제도권의 경계밖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전혜린의 운명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①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문학소녀(발단) → ②끓어오르는 일탈의 욕구(전개) → ③규범을 거부한 처절한 몸부림(위기) → ④사랑도 구제할 수 없었던 삶(절정) → ⑤수수께끼 같은 죽음(결말)』

 

자신의 내적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 이후에 대중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 전혜린. 이런 ‘전혜린’을 향해, 

대중은 선망과 질투, 동일시와 연민, 위안이 함께 투영되어 지금껏 이색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3부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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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율 2019-10-28 12:34:38
불꽃 처럼 살다간 "전혜린"의 3편에 자세한 소개와 해설 감사합니다.물질과 육체를 비롯한 일상보다는 정신에 가치를 주는 작가의 고귀한 정신을 세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전해린 작가의 번역판과 수필를 한번 읽어 볼까합니댜~~.

정영태 2019-10-19 06:48:45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전혜린의 생각과 사상, 잘 앍었습니다.
기자님의 가사를 보면 전혜린은 당시 암울했던 우리나라 제도권에 적응 하지 못 한 신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 갑니다.
이 가을에 기자님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기사 읽고 싶습니다.
유익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전채린 2019-10-17 00:01:46
막연한 전혜린의 모든 걸 이번에 해결해주셨어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은 저가 알기로는 '하인리히 뵐'의 소설 제목이 아닙니까? 좀 헷갈려서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안석호 2019-10-16 23:53:09
3편의 글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해인 2019-10-15 21:46:28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연구논문의 대상이 된다는 점, 말이지요. 그것도 유명대학의 교수들이... 책을 다시 구입해서 봐야 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