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는 지금부터… ‘인도 사진전’ 박영자 작가
전성기는 지금부터… ‘인도 사진전’ 박영자 작가
  • 강효금 기자
  • 승인 2019.10.13 09:2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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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로 우뚝 선 박영자 작가
인도에서 만난 감사와 여유로움, 그 33일간의 기록
도전은 계속, 전성기는 지금부터

 

'영자, 인도에 반하다' 사진전에서 내빈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박영자 작가.    강효금 기자
'영자, 인도에 반하다' 사진전에서 전시장을 찾은 내빈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박영자 작가.           

 

한 시인은 마른 나뭇가지나 소똥으로 불을 피우고 갓 짜낸 양젖에 홍차 잎과 허브를 넣고 '짜이'를 끓이는 인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한 잔의 차를 급히 마실수록 차는 빠르게 바닥나듯, 빠르게 달려갈수록 주어진 삶은 빠르게 줄어들지요.”

덧붙여 시인은 말한다. 짜이를 마실 땐 지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깊은숨을 쉬라고, 짜이 한 잔의 여유가 없는 아침은 삶이 아니라고.

 

왜 인도일까? 왜 사람들은 인도에 가면 철학자가 되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어줄 특별한 사진전이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대구 중구노인복지관에서 열렸다. 박영자(73) 작가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대한민국 정수사진 초대작가, 한국사협 대구지회 연도상(2015), 한국사협 대구지회 10걸상(2016)을 수상한 실력 있는 사진작가다. 그 박영자 작가가 인도를 여행하며 그 사람들의 생활을 담은 ‘영자, 인도에 반하다’는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향 가득한 전통차 짜이를 나눠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듯 인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조곤조곤 우리에게 들려주는 ‘인도 사진전’이 열린 날, 박영자 작가를 만났다. 밝고 단아한 모습의 박영자 작가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사진전에 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도 민속 의상을 입은 박영자 작가의 모습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인도 민속 의상을 입은 박영자 작가의 모습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박영자 작가 제공

 

 

 

영자, 인도에 반하다

 

- 인도의 매력은

 

▶ 2014년 11월, 인도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북인도에 도착한 순간부터 얼마나 가슴 뛰고 설레던지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나마스테'하며 인사를 건네는 인도 사람들에게 '감사'와 '여유로움'을 배웠습니다. 이른 아침 만난 낙타 떼의 긴 행렬,  배 위에서 바라본 갠지스 강의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과 달리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오지를 여행하다 보니 물갈이를 하며 고열에 시달리고, 설상가상으로 낙타가 들이받아  다리를 다치기도 했습니다. 퉁퉁 부어오른 다리에 찜질을 해주던 정안 스님의 극진한 간호가 없었다면 아마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 33일간의 시간이 제게 무엇보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치고 아프고 힘들었던 그 기간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인도에서 때묻지 않은, 탐욕에 물들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고 보니, ‘넉넉한’ 그들의 삶을 담은 사진이 1테라바이트나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발견한 이 귀한 선물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여행의 기회를 놓친 많은 분들에게 제가 느낀 감동과 사랑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습니다.

 

 

사진, 그 마법에 빠지다

 

- 많은 매체 중에 특별히 ‘사진’을 선택하신 이유가.

 

▶ 벌써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25년이 되어가네요. 사진은 제게 ‘생명수’같은 존재입니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낼 힘이 없었을 겁니다. 저희 시댁은 다산 정약용의 후손입니다. 큰 공장을 경영하셨지만 늘 엄격하게 근면함을 강조하던 시댁의 분위기와 많은 직원들의 밥까지 다 차려내야 했던 생활 속에서, 사진은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주말이면 무작정 버스를 타고 사진을 찍으러 나섰습니다. 시댁에서도 유일하게 그 부분은 허락하셨습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몇 시간씩 한곳에 머물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시부모님의 긴 병 수발, 이어진 남편의 투병생활까지. 치매를 앓는 시어른을 모시며 고비마다 저를 버티게 해준 것은 ‘사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은 ‘공원에서 물을 마시는 어린 손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챙모자를 돌려쓰고 물을 마시는 그 작품이 대상을 받으며 몇 년간 고지서에도 그 사진이 실렸습니다. 제 아들, 딸들은 제가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무얼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이번 인도 사진전을 통해 엄마가 아닌 작가로서 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인도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와 '여유'를 배웠노라 고백하는 박영자 작가.  새벽녘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낙타떼의 모습은 낙타몰이꾼의 주홍빛 모자와 어울려,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인도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와 '여유로움'을 배웠노라 고백하는 박영자 작가. 
작가 뒤편으로 배 위에서 찍은 갠지즈 강의 풍경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새벽녘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낙타떼의 모습은 낙타몰이꾼의 주홍빛 모자와 어울려,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시골 할머니, 서울에 가다

 

- 한동안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14년이라는 세월을 환자를 보살피며 보냈습니다.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그리고 뒤이은 남편의 와병. 그때 몸무게가 43킬로가 될 만큼 여위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다시 사회복지학과에 등록해서 학업에 몰두했지만 상실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서울에 사는 동생이 찾아왔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며 제 손을 당겨 서울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건대 네거리, 백화점 안에 위치한 한식당 경영을 맡겼습니다. 그때 제 나이 예순이었습니다.

서울 사람들 눈에 저는 ‘촌뜨기, 시골 할머니’였습니다. 저는 이를 악물고 제 자신을 채찍질하며 버티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차차 단골이 늘어났습니다. 손님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저만의 경영방식을 좋아했습니다. 가까이 위치한 실버타운에 사는 부유한 시니어들에게 집밥을 맛볼 수 있다는 소문이 나서, 가게 매출도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10여 년의 서울 생활은 제게 한 권의 책을 써도 될 만큼 풍부한 경험과 덤으로 생각의 깊이까지 선사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과 멘토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맨 먼저 떠오른 사람은 제 남편입니다. 남편은 늘 제게 한의학 공부를 권유했지요. 하지만 주어진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금 제 모습을 본다면 가장 기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늘 많은 식구들 밥 짓고 뒤치다꺼리하느라, 제 힘든 모습만 봤거든요. 지금 남편이 살아있어 사진작가로 홀로 선 저를 본다면, 틀림없이 응원하며 활짝 웃어주지 않을까요.

이번 전시회는 또 다른 출발점입니다. 저는 제 일생을 담은 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틈틈이 이웃의 삶을 사진에 담는 작업도 계속해 나갈 겁니다. 저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하루가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니까요.

 

이번 사진전에는 색다르게 이 전시회에 의미를 더해준 일이 있었다. 박영자 작가가 이 전시회의 모든 수익금을 복지기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영자 작가의 가족도 정성을 모아, 대표로 오빠인 박길우(77) 씨가 ‘사랑의 후원금’을 대구시 중구노인복지관에 전달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더구나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전성기를 맞은 박영자 작가와 그 가족을 통해 ‘공동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응원한다. 박영자 작가의 전성기는 지금부터다. 그가 미치는 '선한 영향력'도 앞으로 계속되리라.

 

 

                                                                                                                                                                 영상 제공: 박영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