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자식도 남이다. 그저 제일 좋은 남일 뿐이다
(33) 자식도 남이다. 그저 제일 좋은 남일 뿐이다
  • 김교환 기자
  • 승인 2019.10.12 16: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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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라는 어느 노부부 이야기 있다.

시골에 사는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고생고생하며 대학 졸업을 시켰다. 아들은 큰 회사의 과장이 되어 강남아파트에서 명문대학 나온 우아한 며느리와 잘 살고 있다. 부부는 이웃사람들에게 서울 사는 아들 내외 자랑, 공주같이 예쁜 손녀 자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들 역시 효자여서 추석, 설 때마다 제식구들 데리고 고향에 와서 지내고, 돌아갈 때는 언제나 서울로 가자며 잘 모시겠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뜨게 된다. 초상을 치른 아들 내외가 또 간곡히 부탁하기에 할멈도 없는 터라 논밭과 가사를 정리하여 할아버지는 서울로 가게 된다. 가져간 돈으로 큰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처음엔 그런대로 지낼만했다.

그즈음 아들은 과장에서 부장 승진할 때라 일도 바쁘고 새벽 출근에 밤12시가 넘어서야 돌아오는 일이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보니 식탁 위에 “여보, 우리 외식하러 가니 알아서 식사하세요”라는 아내의 메모가 있었다.

한참 뒤 아내와 딸만 들어온다. “아버지는? 아버님 안 계셔?” 노인정에 가셨는가, 생각하며 아들은 모처럼 아버지 방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벽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잘 있거라 3번아, 6번은 간다” 는 글씨가 보였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방 한쪽 구석엔 옷장 하나, 그 위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그 옆엔 작은 소반에 반찬 그릇 몇 개, 먹다 남은 소주 병 하나, 아버지는 그동안 이 골방에서 혼자 식사하고 잠자고 하셨구나.

이튿날 경비원 영감님에게 물어서 뜻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평소에 ”우리 집은 며느리가 1번, 손녀딸 2번, 아들이 3번, 강아지가 4번, 가정부가 5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신이 6번"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돌아서는 아들 등 뒤에 대고 경비아저씨는 말했다. “고향엔 창피해서 안 갈 거고, 집 근처에도 없을 게고, 서울역 지하철부터 찾아보자구. 내 함께 가 줌세.”

부모 자식의 관계는 천륜이다. 자식이 가끔 애물단지이기도 하지만, '농사 중 자식 농사가 제일이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첫딸은 살림 밑천' 등의 속언이 전해 온다.  부모는 그만큼 자식을 애지중지한다.

그런데 사회 변화와 함께 '가족'은 있으면서 '가정'은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한 집안에 3-4대가 함께 사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오늘날에는 부모 자식 간에도 따로 사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핵가족화로 가족주의가 약화되고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과정을 통해서 가족 의식 또한 변했다.

그래서 지금의 노년 세대를 부모에게 효도한 마지막 세대요, 자식에게 버림받은 첫 세대라고들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시대 모습과 잘 어울리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명절 때면 민족 대이동이라 할 만큼 자식 부모 상봉 행사가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가 하면, 이젠 서로 떨어져서 사는데 익숙해 졌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것이 오늘날 우리네 가정의 모습이다.

이제는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자식도 남이다. 그저 제일 좋은 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