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29)
녹슨 철모 (29)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10.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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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은 짜증이 났다. 동시에 깊은 슬픔과 동정심도 함께 일어났다. 그녀는 전남 어느 산골에서 태어나 공부하기 위해 광주에 있는 산업체 공장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 공장은 고향 언니들 말로 낮에는 공장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시켜준다고 해서 들어갔다고 했다. 계획대로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들 다녔다. 그러나 주경야독이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았다. 낮의 피곤이 몰려와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밤에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녀의 취향에도 맞지 않았고 몸도 견뎌나지를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서울 불광동의 어느 가정집 식모살이였다. 이 집의 일은 거저 먹기였다. 시골에서 험한 일을 하던 그녀로서는 이 정도의 일은 쉬웠다. 그런대로 있을 만한 곳이었다. 그러나 일이 생기고 말았다. 어느 날 마나님이 외출한 틈을 타서 주인아저씨가 그녀를 덮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고도 몇 번 더 그 꼴을 당하고 나니 어디 가서 일러 줄 곳도 없고 심한 죄책감과 수치감 때문에 남들을 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고 한다. 죽을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기왕에 버린 몸, 돈이나 왕창 벌어보자는 생각에 전방 기지촌으로 가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가면 뭉칫돈을 만질 수 있다는 소개소의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태원은 분노와 의협심과 장난기가 동시에 발동했다.

"이봐, 너 이야기 들어보니 이야기 돈 한 푼도 못 벌고 여기를 떠날 것 같은데......”그 여자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넌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 군대는 팔도 조선놈들이 다 모여 있어. 성질 더러운 놈. 착한 놈. 그 들 중에는 이북까지 들락날락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야. 여러 층의 놈들이 있어.” 그녀는 상당히 솔깃한 표정이었다.

"넌 네 말대로 여기 돈 벌러 왔잖아? 그러니까 너를 위해 하는 말인데, 이 바닥에서 돈을 벌려면 일단 너의 몸을 다 던져야 해. 몸을 사리면 안 돼. 군인들이란 화끈한 걸 좋아하거든. 이런 집에 오는 놈들이란 모두가 너를 껴안거나 주무르고 그리고 한 번 하려는 그런 놈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란 말이야. 너 같은 신 참 중에는 이 바닥에 왔으면서도 춘향이처럼 몸을 사리는 바보같은 년들이 있어. 바로 그 점이 문제란 말이야. 그 화끈하고 단순한 놈들에게 좋은 술집 계집이란 소리 듣는 방법을 내가 얘기해줄게, 그건 그놈들이 너를 어쩌기 전에 네가 먼저 걔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안기고 기대고 주무르는 거야. 옷 벗기를 주저하지 마. 그러면 너는 금방 이 동네 스타가 되는 거야!" 태원은 처음에는 농조로 지껄이다 자신의 이론에 감동되어 점점 더 열을 올려 사기를 치고 있었다.

“내가 널 깔봐서 하는 소리는 아니야. 지금 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참한 여자야. 남들이 널 개똥같이 본단 말이야. 하지만 네가 돈을 왕창 벌어 갑부가 되어봐. 그러면 어떤 놈도 너의 과거를 따지지 않아. 아니지 모든 남자 새끼들이 너에게 잘 보이려 바지를 벗고 춤을 출 거야. 너를 존경한다며 종처럼, 개처럼 너의 앞에서 기어 다닐 거야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이 아니니? 그까짓 몸 확 다 주어 버려, 놈들이 말하기 전에 네가 먼저 가랑이를 확 벌려 버리란 말야! 그러면 넌 반드시 성공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는 눈치였다가 이윽고는 그의 말이 진담으로 느껴지며 자신의 나아갈 길을 결심 한 눈치였다.

 

‘아다라시가 나타났다’ ‘기똥찬 미인이 나타났다.’ ‘서비스 만점의 계집애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여러 부대에 퍼져 나갔다. 태원이 퍼트린 소문이 점점 크게 번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가본 군인은 다시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에게 '정말 대단한 계집이 왔다' 며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에 속아서 간 자신이 분해서 남들도 한 번 당해보라는 심정에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춘매’ 의 주인은 희희낙락이었다. 괴물에 가까운 저 얼굴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손님이 모여드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태원은 쾌재를 불렀다. 그녀의 분투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시 찾아가지는 않았다. 만나면 그 못난 얼굴 때문에 기분이 상할까 걱정이 되었고 어쩌면 자신 앞에서 훌러덩 옷을 벗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말 속이 메스꺼워. 그 못생긴 얼굴에 밝히기까지 한단 말이야. 차라리 가만히라도 있어 주면 좋겠는데 그년이 오히려 남자들에게 매달리고 주무르고 하니까 술맛이 다 떨어져.”

태원은 자신이 세운 작전계획의 중간평가를 위해 암암리에 동료들의 여론을 조사해보았다. 그녀의 눈물 어린 적극적 눈높이 서비스가 손님들에게는 꼴에 남자 밝히는 계집으로 잘못 평가되어가고 있었다. 많은 부대의 장병, 사병들이 한 바퀴 다 돈 뒤에는 그녀를 찾는 손님이 없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기지촌을 떠들썩하게 하던 그녀의 춘매 생활은 짧게 끝나고 말았다. 돈을 벌게 해준다고 한 일이 돈줄을 막게 되었다. 태원은 한 가닥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도리없는 일이었다.

 

병주는 직장 관계로 태원을 자주 찾아오지 못하였다. 대신 편지를 자주 보냈다. 전에는 백지에 써 보내던 편지가 그림이 있거나 색깔이 들어 있는 편지로 바뀌었다. 그런 편지지를 보면 태원은 내용도 보기 전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전 같으면 병주나 태원 모두 그런 종류의 편지지를 싫어했다. 뭔가 가식된 듯 어색하고 또 낯간지러운 짓거리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이란 마음이 한 번 후끈하고 달아오른 상태가 되면 그때는 쑥스러움이나 어색함, 창피함 등은 간 데 온 데 없이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나중에 그 사랑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그때는 도덕이니 규칙이니 하는 것마저 모두 헛소리가 되고 만다. 이런 현상을 보고 ‘사랑을 하면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일까. 병주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 병주의 태도가 이렇게 변하였다. 그러나 태원은 생각은 달라졌으면서도 애정의 표현에는 여전히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했다. 인간의 행동이나 감정은 무의식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감정이 작용하여 평생 영향을 받는다. 인간은 자신들의 말이나 행동이 그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므로 결과적으로 나타난 부분에 대해 애써 의식적으로 설명하고 해석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자신의 무의식에 기인하는 행동을 의식적 사고로 설명하자니 남들에게 실감을 주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마저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설명을 못할 때가 많다.

태원은 어릴 때부터 살림살이는 넉넉했지만 애정은 항상 결핍이었다. 그의 부모는 끊임없이 그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며 구속했다. 입으로는 애정의 표현이라고 했다. 태원도 어릴 때는 그게 애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성장 후에는 그것이 부모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고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태원의 아버지도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태원의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장손으로 명예를 잃고 굶어 죽을 정도의 가난 속에 살던 그 아버지를 따라 도회지로 나와 오랜 동안 도시 빈민으로 천하게 굶주리며 살았다. 그러기에 자손에게는 그런 아픔을 유산으로 남겨주지 않겠다고 결심하였고 고생 끝에 기아는 벗어났다. 다음 목표는 명예 회복이었다. 애들을 열심히 공부시켰다. 태원은 그의 아버지의 계획대로 잘 따라 주었다.

 

태원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공장에 취업하여 잔뼈가 굵었으므로 모든 철학이나 삶의 지침이 일본인의 그것과 같았다. ‘절대로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남자는 울지 않아야 된다’ ‘집 밖에 나가면 적이 일곱이다’ ‘무사는 전쟁이 끝나도 투구 끈을 풀지 않는다’ 등등 그가 일본인에게서 배우고 들은 소리를 금과옥조로 알고 아들들에게 같은 교육을 시켰다. 태원은 일본 적산가옥에서 태어나 이사 한 번 하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 일본 집에서 출생하여 거기에 살며 일본식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셈이다. 어쩌다 친구들 집에 가면 더럽고 질서가 없어 보여 이질감을 느꼈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도 이상하게 보였다. 더구나 6·25 때 피란 내려온 집 애들을 보면 저들은 원래 종자가 따로 있어 저렇게 고생하며 살도록 태어난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애들은 부모가 호구지책으로 집을 비우고 나면 애들은 점심을 굶고 제멋대로 도시 변두리로 달려가 설익은 사과나 채소를 서리하기도 하고 도심의 미군 부대에 몰래 들어가 물건들을 훔쳐 오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그들이 영웅처럼 보였다. 그들의 속박과 규율을 깬 자유로운 삶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자라면서 태원은 늘 사람이란 무엇이든 가져야 된다. 특히 사나이 삶의 목표는 무엇이든 소유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 쌀밥을 먹지 못하고 굶거나 밀가루 수제비를 먹는다. 먼 길도 차를 못 타고 걸어가야 한다. 아무리 양반이라도 돈이 없으면 제사도 지내지 못한다. 그의 할머니가 소작 붙일 땅이 없어 고향을 떠나온 이야기, 소위 양반이라고 해서 막 일도 못하고 굶던 그 눈물 나던 이야기들이 모두가 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특히 6·25를 겪어보니 어린 태원도 ‘양반이 문제가 아니고 힘이 제일이다’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힘이란 어른에게는 돈이나 권력이고 아이들은 공부였다. 돈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고 인품도 좌우하였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하면 반장이 된다. 반장이 되면 힘이 센 친구라도 그의 부하가 된다. 선생님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태원이 5학년 때 6학년 선생이 그의 반 여학생 10여명에게 시험지를 두 손에 받쳐들게 하고 태원의 교실에 왔다. 6학년 담임이 이런 공부 못하는 애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하고 후배들에게 배워야 한다며 한 학년 아래인 태원의 반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그 선생 지시로 태원과 몇몇이 그 선배 여학생 틀린 시험문제를 고쳐준 적도 있다. 이런 경우도 공부를 잘못한 탓에 온갖 수모와 모독을 겪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태원은 어릴 적부터 보고 듣기를 남에게 없는 것을 가지면 세상 살기가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버지의 훈육이었다. 어린 태원은 공부를 잘해야 그의 아버지 뜻을 따르는 것이었으므로 열심히 공부하였다. 태원은 남에게 지지 않는 인간, 남보다 더 똑똑한 사람, 더 능력 있는 사람 그리하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남자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또한 아버지의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