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변인(代辯人)
말은 사용하면서 생겨나고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어떤 말은 사용에 의해서 의미가 변용되거나 분화되기도 한다. 근래에 와서 ‘작가(作家)’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용, 분화되고 있다. ‘작가’는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으로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TV 드라마 전성시대에 살면서 ‘드라마 작가’와 함께 ‘방송 작가’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다큐멘터리나 탐사 보도의 대본을 쓰는 사람은 물론, TV 화면에 토막글을 게시하는 사람도 ‘방송 작가’라고 한다. 이러한 의미 분화가 정착되면 사전에도 새로운 의미로 추가될 것이다. 표준어에 준하는 현행 한국어능력시험 차원에서 보면, 이들은 작가가 아니다. 항간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판하는 정치인 모씨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작가’라고 특별히 지칭하고 있다. 그가 소설, 수필, 희곡 등의 창작 작품을 출간한 적이 없다면 작가가 아니라 유명 저술가(著述家)일 뿐이다. 언어는 사용에 의해서 공유되는 사회적 도구이니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대변인은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대신하여 의견이나 태도를 표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있다. ‘대변인’의 ‘변(辯) 자의 의미는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이 한결 같다. 『설문해자』에 의하면, ‘변(辯)’이라는 한자는 약 3천 년 전부터 사용되었다. 언령(言靈)이 실재하는지 몰라도 ‘변(辯)’자의 생명력과 의미의 절묘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를 대신하여 의견이나 태도를 말하는 사람’이다. 그 자리를 거치면 정치적으로 출세하기도 하지만 그리 쉬운 직책은 아니다. 청와대 마크가 선명한 마이크 앞에 서서 무언가 발표하면 각 정당은 물론 국민들도 반응이 서로 다르다. 액면 그대로 수긍하기도 하지만, 또 거짓말하는구나! 라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며칠이 지나면서 거짓말로 드러나므로 그렇다.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느냐?”라고 외면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농담으로 대변인의 의미를 재 정의하기도 한다. “대변인은 어떤 사람의 대변(糞)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늘 대변을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냄새가 나서 보고 듣기가 거시기 하다.
대변인의 말은 대체로 진솔하거나 순조롭지 못하다. 대변인의 '대(代)'는 '대신하다'이고, 변(辯)은 ‘辛+言+辛’으로 두 개의 ‘쓸 辛’자 사이에 ‘말씀 言’이 들어있으니 '대신해서 좀 쓴말 또는 힘든 말을 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냥 평이한 말을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말을 대신하는 사람이 대변인이다.
『강희자전』과 『설문해자』의 용례를 살펴보면, 변(辯) 자의 뜻은 아주 먼 옛날부터 '판(判)' '별(别)' '교언(巧言)' 등의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판(判)'은 ‘나누다, 분산하다(分也. 分散也)’이고, '별(别)'은 ‘분해하다, 분별하다(分解也, 分別也)’이며, '교언(巧言)'의 ‘교(巧)’는 ‘기교를 부린다(技也)’, 즉 ‘교묘하게 꾸며 대다’라는 말의 술책이 들어있다. 이러한 의미 풀이를 종합해 보면, 대변인은 어떤 사람을 대신해서 그 내용을 필요에 따라 분산시키거나 세분하면서 교묘하게 꾸며대는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대변인이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것도 이러한 말의 속성 때문인지 모른다. 각 정당 대변인의 말은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의도적인 독소를 품기도 한다. 그들의 역할은 미묘한 이권 쟁취를 위해 특이한 비유로 상대방을 무차별 공격하는 격투기 선수 수준에 이른다. 그야말로 대변인이 아니라, ‘이치에 맞지 않는 말솜씨, 즉 궤변(詭辯)인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어려운 자리임에 틀림없다. 대변인이라는 말에 언어, 사고, 행동, 그리고 일상적인 삶의 애환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니 역사의 흐름도 말이라는 보이지 않는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자의 종주국 중국에서는 대변인을 영어의 spokesman을 직역한 ‘발언인(發言人)', 즉 '발표하는 사람'이라 한다. 대변인보다 의미가 단순해 보이지만,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이니 실제 사용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예기(禮記)』에 보면, 공자는 한 나라를 평가하는 척도가 백성들이 사용하는 말이라고 했다. 백성들의 사람됨이 ‘온유돈후’하다는 것은 그들의 말이 부드럽고 아름다워서(溫柔), 인정이 두텁고 후덕(仁厚)한 성품을 가졌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변인들의 말이 온유돈후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나라에 살고 싶다. 말은 마음이다. 마음이 넉넉해야 행복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