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백천계곡엔 이른 단풍이!
봉화 백천계곡엔 이른 단풍이!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10.07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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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단풍 들겠네!"
축제도 즐기도 가을 단풍은 봉화 백천계곡으로!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단풍에 설레는 여심. 이원선 기자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단풍에 설레는 여심. 이원선 기자

계절의 힘겨루기에 밀린 여름 위로 가을이 스멀스멀 자리하고 설악산 대청봉으로부터 날아든 단풍소식이 실감나는 시기다.

지난 106(성급한 마음으로 단풍을 찾아 봉화군 석포면에 있는 백천계곡을 찾았다. 별 기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계곡의 초입은 아직도 여름이 성성하여 녹색 천지다반발이라도 하듯 바람결은 한결 숙져서 선선하다 못해 소매 끝에서 차다. 매미가 울던 자리에는 풀벌레가 울고 나뭇가지에 몸을 숨긴 새들이 제각각의 색깔로 노래한다. 하모니를 이루는 자연의 음색이 발걸음에 힘을 싣고 도시의 잡다한 생각들을 머리로부터 정리한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보약 한재를 달인 듯싶다.

토종꿀이 가득한 듯 싶은 벌통. 이원선 기자
토종꿀이 가득한 듯 싶은 벌통. 이원선 기자

백천계곡은 태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여기서 발원한 옥계수가 650m 이상의 고원을 거쳐 만들어낸 계곡이다. 수온이 낮아 열목어가 사는 지역이다. 열목어는 차가운 물속에 사는 연어목 연어과의 민물어종이다. 같은 위도 상에서는 살수 없는 열목어가 이곳에는 서식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열목어가 사는 세계 최남단 지역으로, 열목어의 남방한계선인 셈이다. 아니게 아니라 계곡에서는 연신 찬기가 풍기고 보호하려는 듯 출입을 막는 안내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99절이라 일컫는 음력 99일을 하루 앞둔 날이라 그런지 주차장엔 차들이 예상외로 많아 보인다. 현불사를 품은 산속에서 울려나오는 염불소리를 흘려들으며 20여 분을 걷자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등산로가 나타나고 우측에 자리한 단풍잎에 붉은색이 완연하다.

가지가지마다 오지게 연 미니사과. 이원선 기자
가지가지마다 오지게 연 미니사과. 이원선 기자

오매 단풍 들겠네!”

그냥 갈수가 없어 일행들은 휴대폰과 카메라를 빌려 이른 단풍으로 자신의 얼굴을 아로새긴다. 물소리는 여전히 청아하고 바람소리는 티 없이 맑다. 나뭇잎에 번진 붉은 모양새가 물을 잔뜩 품은 한지 위에 떨어뜨린 노랗고 붉은 잉크 같다. 바쁘지 않아 천천히 퍼져가는 색색이 밤을 지나면 산야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당장을 외치고 싶지만 한발 물러서니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고 자연이 내는 소리가 풍경소리처럼 은은하다. 세속에 찌든 때가 절로 씻기는 기분이다.

문득 연세가 지긋하신 스님이 칫솔과 물병을 들고는 곧장 개울가로 향한다. 일각이 채 못되어 ~ 시원타!”하고 언덕을 오르는 스님께 그저 부처님이 계신 듯합니다하자 묵묵히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킨다. 이때 우매한 중생은 손가락을 봐야하 는지 아니면 가슴을 봐야 하는지!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고 죽비가 날아들 것 같다.

안개가 짙어 오리무중 아니고 앞이 캄캄하니 그저 오리무중!

우매한 중생은 여태껏 가슴 안에 든 부처님을 찾지 못했습니다하자 그저 허허허웃으시곤 표연히 사라진다.

두메산골의 벽촌에는 도회지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토종 벌꿀.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 어깨를 기댄 듯 다닥다닥 붙은 텃밭에는 잎이 누런 고구마, 배추, , 곰치 등등이 오순도순 자라고 허공으로는 가을을 예찬하는 잠자리가 포물선을 그린다.

배추밭에 마음을 빼앗긴 여심. 이원선 기자
배추밭에 마음을 빼앗긴 여심. 이원선 기자

터벅터벅 물소리길을 벗어나자 보이는 과수원엔 미니사과가 빨갛게 농익어 가지가 비좁도록 주렁주렁하다. “사과농사가 부자 같습니다부러워 말을 붙이자 종종걸음의 농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글쎄요! 저게 돈이나 될까요? 문제는 수확인데 일손이 없어서...!”하는 넋두리 같은 푸념이 가을 새벽의 한숨처럼 길다. 두어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맛이나 보고 가세요!”뜨내기의 길손을 불러 세운다. 아마도 농촌 인심에 그냥 보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봄부터 지금까지의 수고를 생각하면 차마 딸 수가 없다. “감사합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돌아서는 뒤로 또 오세요!” 배웅이다.

하산 길에 국립공원 관리직원이 저만치 아래쯤에서 사과와 장바구니를 받아가란다. 20여분의 거리에 이르자 남녀가 한조로 백천계곡 홍보에 열중이다.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휴대폰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산행 중 촬영한 사진을 공유하면 끝이다. 받아든 사과를 반으로 하니 갈라 입에 넣자 단물이 철철 넘친다. 맛있냐고 물을 필요가 없다. 한입 베어 문 사람은 전부 달다를 연발한다. 사과 품종이 홍로라 그런지 유난히 붉어 보인다. 오히려 지독한 여름을 토해내는 핏빛 단풍이 무색해할 정도다. 욕심에 받은 사과는 제쳐두고 한 알 더 얻어 맛보고 싶단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밉지 않은 눈총뿐이다. 인심이 좋고, 공기가 맑고, 음전한 산이 좋고, 바람결이 무명 솜을 닮아선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산골의 오후나절이다.

백천계곡의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 이원선 기자
백천계곡의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 이원선 기자

그 앞쪽의 현수막에도 10월 셋째 주에 있을 축제에 대하여 세세하게 적고 있었다. 그 중요 내용을 살펴보면?

20191019()부터 20()까지(이틀간) “2회 봉화 백천, 단풍 소리와 만나다.”를 주제로 단풍길 걷기대회, 공연(경품추첨). 체험부스, 먹거리장터 등의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었다.

봉화는 오지 중의 오지다. 그만큼 접근성이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대가 많이 변했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영주에서 새로 난 우회도로를 이용하면 쉽게 다닐 수 있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기왕에 단풍을 찾고 가을을 즐기고 싶다면 백천계곡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고추를 말리는 모습이 정겹다. 이원선 기자
고추를 말리는 모습이 정겹다. 이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