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방운아의 삶과 노래
가수 방운아의 삶과 노래
  • 여관구 기자
  • 승인 2019.10.03 04: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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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이 낳은 가수
- 우리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준 가수
- 삶을 아름답게 포장해준 가수
- 가요계의 별 방운아
경산의 가수 방운아의 노래비 모습 - 여관구 기자
경산의 가수 방운아의 노래비 모습 - 여관구 기자

가수 방운아(方雲兒)는 본명이 방창만(方昌萬)으로 1931년 2월 20일 경북 경산시 서상동에서 태어났다. 경산초등학교와 창선중학교, 경산고등학교를 졸업을 했다. 어려서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사촌형이 운영하던 두부공장에서 맷돌을 돌리며 노래에 재능이 있어 노래연습에 몰두하였다. 고교 졸업반 시절 대구 오리엔트레코드 주최 전속가수 선발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하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데뷔 직후 방태원(方太園)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홀연 부산으로 내려가서 작곡가 백영호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빅토리, 미도파 등 두 레코드사에서 여러 곡을 히트시켰다. 방운아는 타고난 미성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가요팬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그의 노래는 맑고 깔끔한 성음으로 서민적 삶의 고통과 애환 토속적 정취와 여운을 잘 담아내고 있다. 자신의 고향인 경북 경산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짙은 향수는 노래가사의 대목 대목마다 스며들어 있다.

방운아의 노래비 뒷 모습 - 여관구 기자
방운아의 노래비 뒷 모습 - 여관구 기자

이와 더불어 민족사적 테마와 전통, 세대풍자, 지역성과 풍물 테마도 자주 등장한다. 방운아의 대표곡으로는 출세작이었던<마음의 자유천지>를 비롯하여 <인생은 나그네> < 한 많은 청춘> <두 남매> <일등병 일기> <재수와 분이의 노래> <경상도 사나이><오백년 고려성> <부산행진곡> <여정망향><여수야화> 등 다수가 있다. 방운아의 가요목록 중에는 영화주제가도 여러 곡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가수 방운아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높았음을 알려준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가요계에 데뷔하여 당시 대중들의 따뜻하고도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방운아는 일생을 통하여 모두 122편 가량의 역사적 의미가 담긴 가요작품을 발표함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요인물로 자리를 잡았다. 가수 방운아는 2005년 6월 15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록 떠났지만 경산이 배출한 가수 방운아의 주옥같은 노래들은 애틋한 향수와 다정한 그리움을 지닌 노래로 우리 곁에 남아있으리라.

가수 방운아의 노래 역사 - 여관구 기자
가수 방운아의 노래 역사 - 여관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