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교와 강선루가 어우러지는 선암사②
승선교와 강선루가 어우러지는 선암사②
  • 장희자 기자
  • 승인 2019.10.03 04: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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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고사: 학승들이 여기서 강학(講學)을 하였던 목조건물 강당으로 앞면을 육조강당이라 썼다.
육조고사: 학승들이 여기서 강학(講學)을 하였던 목조건물 강당으로 앞면을 육조강당이라 썼다.

 

범종루 밑으로 난 계단을 올라서면, 정면에 ‘六朝古寺’(육조고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누(樓)가 길게 모습을 드러낸다. 단청 없이 나무기둥 사이에 흰 벽을 두었는데, 퍽 단아해 보인다. 이곳은 강당으로 쓰이는 만세루이다. 육조고사라는 현판을 이곳 선암사에 붙인 것은 중국의 선승 육조 혜능이 조계산에 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암사가 조계산에 위치한 인연을 기리기 위해서인데, 육조(六祖)를 뜻하는 한자가 육조(六朝)로 달리 표현된 것으로 추측된다. 글씨는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1614~1636)이 썼다고 전해진다.

만세루: 육조고사 적힌 반대편 모습

만세루를 옆으로 돌아들면 대웅전과 설선당, 심검당이 만세루와 함께 안마당을 이루고 있는 대웅전 영역이다. 이곳에서는 앞마당에 서 있는 동서 삼층석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외관상 크기와 양식이 비슷한 두 기의 삼층석탑은 높이 4.7m이며 보물 제395호이다.

3층석탑: 대웅전 앞에 있으며 보물 제395호

삼층 석탑을 살펴보면 정방형의 지대석 위에 날렵한 기단부가 올라서 있다. 기단부를 이루는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은 여러 개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매씩인데 몸돌에는 우주가 모각돼 있고, 지붕돌은 층급 받침이 4단이며 지붕돌 위에는 독특하게도 호형(弧形)과 각형(角形) 두 단으로 이루어진 몸돌 받침이 있다. 동삼 층석탑은 외관상 서탑과 거의 동일하나 일부 부재가 본래의 것이 아니다. 1986년 해체 복원 때 초층 몸돌에서 사리장신구가 발견된 바 있다.

선암사 대웅전: 다포계 겹치마 팔작집으로 단아하면서 장중함이 절로 우러나는 건물.

단아하면서도 정중함이 절로 우러나는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순조 25년(1825)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기단은 막돌을 1m 정도 자연스럽게 쌓아올렸으며, 그 위에 초석을 놓아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창호는 모두 빗꽃살로 장식하였으나 마모가 심하며, 빛 바랜 단청으로 고색이 넘친다.

설선당: 대웅전 왼쪽에 있으며 1층은 스님 거처와공양하는곳, 위층은 수납공간.

마당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 왼쪽에 자리잡은 설선당은 외부에서는 단층으로 보이나 내부는 중층인 ㅁ자형의 건물이다. 1층은 스님들의 거처와 공양하는 곳이며, 위층은 수납 공간이다.

심검당: 환기창에 수(水), 해(海)처럼 물과 관련된 글자가 장식처럼 투각돼 있는 것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처방.

마당을 가운데 두고 설선당과 마주한 심검당 역시 중앙에 조그만 마당을 둔 ㅁ자형 건물로, 설선당과 유사하다. 환기창에 수(水), 해(海)처럼 물과 관련된 글자가 장식처럼 투각돼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선암사의 지세가 산강수약하여 전각들이 빈번하게 불타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이와 같은 처방을 한 것이라고 한다.

팔상전: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60호

대웅전 영역을 벗어나 대웅전보다 한 단 높여 쌓은 축대의 계단을 오르면 팔상전·불조전·원통전·장경각이 배치된 원통전 영역에 들어선다. 팔성전과 불조전이 나란히 앞쪽에 자리해 있으며, 두 건물 사이로 독특한 형태의 원통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를 모시고 있다. 불조전은 과거 7불과 미래 1,000불의 불조인 53불을 함께 모시는 전각이다. 이들은 모두 7점의 탱화에 나뉘어 그려졌는데 숙종 28년(1702)에 제작되었다. 지금은 그중 5점만이 남아있다.지장전은 명부의 10대왕이 모셔졌으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선암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조각상들이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며,  조선 현종 원년(1660)에 초창하여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중수하였으며, 순조 24년(1824)에 재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경각은 원통전의 뒤켠에서 왼쪽으로 비켜난 곳에 있으며 각종 경전을 보관한다.

칠전선원입구: 스님 수행 도량으로 응진당, 달마전, 진영당, 미타전, 신신각 등이 안에 있다.

원통전의 뒤켠 오른쪽으로는 응진전·달마전·진영당·미타전·산신각이 모여 있는 응진전 영역이 있다. 응진전 영역은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약간씩 밀려들어가면서 배열되어 있는데, 대문에서 볼 때는 가지런하게 보이는 것이 독특하다. 진영당에는 아도화상을 비롯하여 도선국사, 대각국사, 호암대사 등 선암사에 주석했던 큰스님들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태고총림 방장실인 무우전을 둘러싼 돌담길에 홍매화 50여그루가 심어져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응진전 영역 옆은 선암사에서 가장 외진 곳으로 한적하기 그지없는 무우전 영역이다. 무우전은 얼마 전까지 태고총림 방장실로 쓰였다. 무우전은 ㄷ자형의 승방으로, 각황전을 둘러싸고 있다. 규모는 크지만 형태는 소박한 승방과, 비록 단출하지만 화려하고 날렵한 각황전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각황전에는 신라 말 도선국사(827~898) 당시에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철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대한불교 태고종 종정원 대문: 현재 태고종 종정은 혜초 대종사

그밖에 경내에는 창파당과 천불전 등의 전각이 있는데 대웅전 영역 왼편에 자리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증설된 건물들이다. 창파당은 종무소와 강원으로 사용되는 ㅁ자형 건물로, 현대적 건축재료를 많이 쓰고 외벽을 유리창으로 마감한 것이 눈에 띈다. 무량수전이라고도 불리는 천불전은 교육원으로 이용되며, 역시 ㅁ자형이다. 중앙에 마당을 두었으며, 전체가 중층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골격이 커서 웅장해 보이며 이국적인 느낌도 든다.

선암사 와송: 삼성각앞에 있으며 고려 시대 대각국사가 선암사를 중창할 때 심었다하며 수령 600여년

선암사의 요사채는 ㅁ자형 건물이 특히 많다. 설선당·심검당·창파당·천불전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모두 안마당 쪽에 넓은 대청을 갖고 있는 점이 민가와 비슷하고 위층은 수장 공간으로 이용하는 특징이 있다.

선암매(仙巖梅): 천연기념물 제488호, 수령 600여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백매화나무

선암사는 ‘꽃’과 ‘나무’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열흘에 한번 단장을 바꾼다는 유홍준 작가 말처럼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지는 선암사는 수종만도 100종이 넘는다. 수령이 600년에 달하는 선암사 백매와 홍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매화기도 하다. 고려 시대 대각국사가 선암사를 중창할 때 삼성각 앞 와송과 함께 처음 심었다고 전해진다. 3월 중순에 핀 청매화가 지면 4월엔 홍매화가 꽃을 피우고, 경내 즐비한 백철쭉은여느 철쭉과 비할 바가 아니다.

선암사 좌측 종무소와 오른쪽 설선당 사이에 원시림처럼 우뚝솟은 거대한 전나무 노송과 샘물

선암사는 현재 사적 제507호로 지정돼 있으며, 송광사와 함께 선암사 일원이 명승 제65호로 지정돼있다. 보물 14건, 천연기념물 1건, 중요민속문화재 1건, 시도유형문화재 7건, 시도기념물 1건, 문화재자료 3건 등이 전해지며, 승선교와 강선루를 비롯해 당대 최고 건축가였던 고(故) 김수근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측간’이라 극찬했던 ‘뒤깐’도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명물로 꼽힌다.

운수암 가는길 선암사 사적비와 중수비 둘레의 삼나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