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의 ‘손가락 염주’
공광규의 ‘손가락 염주’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9.20 11:42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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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의 ‘손가락 염주’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주무르고

막힌 변기를 뚫고

아이들과 어머니 똥오줌을 받아내던

아내의 관절염 걸린 손가락마디

 

이젠 손가락마디가 굵어져

신혼의 금반지도 다이아몬드반지도 맞지 않네

여행지 초원에서 끼워준

들풀반지 들꽃반지가 제격이네

 

아니, 이건 손가락마디가 아니고

염주 알이네 염주뭉치 손이네

내가 모르는 사이

아내는 손가락에 염주 알을 키우고 있었네

 

시집 『담장을 허물다』 창작과비평사. 2013. 08. 30.

 

사람의 손은 그의 일생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거울이지 싶다. 무슨 일을 하며 살아왔는가가 손에서 다 드러난다. 팔십 평생 농사에 매달린 시어머니의 손가락을 본 적이 있다. 펴도 펴지지 않는 기형이 돼버렸다. 당신 손도 한때는 곱고 보드라운 것이었을 텐데, 그리 되도록 얼마나 많은 고단이 세월이란 옷을 입고 어머님을 스쳐갔을까. 손톱 밑에 새까맣게 낀 때는 일 년에 한 번도 목욕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일손 놓고 편히 사시면 좋으련만 무슨 의무가 남았는지 땅을 버리지 못하니 팔자소관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시적 모티브가 된 ‘손가락마디’의 주인공이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라는 점이 특이하다.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 남편의 연서처럼 읽힌다. 보통 주부들의 일상사를 이토록 애처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꾼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우리들이 미처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는 더한 고생을 하면서 사는 아내도 많을 터이기에 말이다. 관절염 걸린 아내의 손가락마디가 염주 알로 확장되며 생각을 증폭 시킨다. 마디 굵어진 아내의 손가락에 들꽃반지 하나 끼워준다면 신혼의 금반지, 다이아몬드반지보다 더 값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