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을 꿈꾸는 사람들
'가을의 전설'을 꿈꾸는 사람들
  • 김응환 기자
  • 승인 2019.09.20 16:2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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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고령보 LSD(장거리훈련)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을 위한 막바지 훈련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디아크광장, 대구마라톤협회 제4차 장거리훈련 출발선에서 준비하는 주자들 모습

지난 9월 15일 추석 연휴 끝자락 강정고령보 디아크광장 이른 새벽 5시, 달리기 복장으로 여기저기서 우르르 몰려든다. 일부 40대도 간간히 보이지만 대부분 5~60대로 보이고, 70세 이상 되신 분들도 몇 분 보인다. 주차장 옆 화장실이 한동안 시끌벅적하다가 사회자의 구령으로 모두 다 한자리에 모인다. 오늘이 마지막 훈련이라서 그런지 모인 사람이 250명은 넘어 보인다. 제4차 대구마라톤협회 LSD(장거리훈련) 준비 현장이다.

10월 20일 경주동아마라톤 및 10월 27일 조선일보춘천마라톤 등 가을에 개최되는 각종 마라톤대회에 대비하기 위한 장거리훈련이다. 특히 춘천마라톤대회는 마스터스 달림이 들에게는 ‘가을의 전설’로 불린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조금 떨어진 출발장소로 이동한다. 출발은 자기 기량에 맞춰서 조별로 출발한다. 거리는 각 조에 맞게 34~42km로 정하고 페이스메이커가 선두를 이끈다. 거의 선수급인 에이스 조를 선두로, 그 뒤 1조는 km당 4분 30초 페이스로 달리고, 2조는 5분 00초 페이스, 3조 5분 20초 페이스, 이렇게 해서 마지막 7조는 6분 50초 페이스다. 한 조에 3~40명씩 조금의 간격을 두고 출발한 각 조는 종료 시각을 비슷하게 되도록 거리의 차등을 줬다.

대구 달림이들이 선호하는 오늘의 훈련코스는 디아크광장을 출발하여 낙동강을 끼고 도는 자전거 길을 따라 성주대교를 지나 제2왜관교까지 왕복하는 코스다. 장거리훈련의 가장 중요한 도중 급수는 대구마라톤협회 지부별 차례대로 자원봉사를 담당한다. 총 여섯 곳의 급수대에는 생수와 음료수, 바나나, 초코파이 등 간식을 공급한다. 여러 번 행사를 진행해서 그런지 급수대 운영도 일사불란하다. 그래서 대구마라톤협회 회원이 아닌 사람도 이 장거리훈련 참여를 선호한다. 회원인 필자도 오늘은 제6조에 참가하여 동반 주 하면서 취재하기로 했다. 6조와 7조는 달리는 주자가 40명 정도가 되었으며 여성 주자들도 거의 반수에 가깝다. 6조의 목표 거리는 36km다.

첫 급수대를 앞두고 대오를 유지하고 달리는 모습, 갈길은 멀지만 아직은 모두 여유가 있어 보임

5시 40분 드디어 내가 소속된 6조가 출발했다. 달리는 도중 철제봉 등 위험한 구조물이 나타나면 앞선 주자가 “조심!”을 외치며 몸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또 자전거가 나타나면 앞이나 뒤에서 “자전거!”를 외치면 대열이 우측으로 밀착한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출발한 주자들이 한참 달리다 보면 낙동강의 시원한 물줄기와 길옆 무성한 나무와 풀들이 눈을 편하게 하고 더위를 식혀준다. 마침 오늘은 구름이 끼어 햇빛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나 습도가 좀 높은 편이다. 멀리 강변구장에서 운동하는 모습도 보이고, 줄지어가는 자전거의 행렬을 지나치다 보면 어느새 몸이 풀리고 호흡이 안정을 찾아간다. 좀 힘들고 목이마르면 어김없이 4km 정도마다 급수대가 나온다. 급수대에 도착하면 자원봉사자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생수와 간식을 제공한다. 너무나도 반갑고 고맙다. 그분들 덕분에 평소 혼자 달릴 때보다는 훨씬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것 같다.

약간 오르막길, 고지가 저기인데! 힘들지만 주자들이 힘차게 치고 올라가고 있는 모습

선두에 출발한 주자들은 벌써 반환점을 돌아온다. 역시 폼이 멋있고 활기차다. 20km가 지나면서 이제 서서히 호흡이 가빠오고 땀이 비 오듯 하지만 아직은 견딜만하다. 모두 힘들지만, 가을의 전설을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린다. 여름에 흘린 땀의 결과는 가을의 마라톤대회에서 보상을 받는 것을 달림이들은 잘 알고 있다. 30km가 가까워지면 이제 장딴지에서부터 묵직한 고통이 밀려온다. 근육에 경련이 오면 속도를 조금씩 늦춰보기도 한다. 기온의 상승과 함께 속도는 점점 더 떨어진다. 버텨온 정신력도 거의 바닥이 날 것 같다. 갈 때는 조별로 무리 지어 달렸지만 이제 조금씩 대오가 흐트러지고 3~4명 아니면 혼자서 달리는 사람이 늘어난다. 추월하는 구릿빛 여성의 힘찬 레이스도 보인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으면 그 먼 거리를 달리고도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있을까?

앞만 보고 묵묵히 달리다 보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멀리 결승선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강정보 다리도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3km는 몸이 천근만근이다. 낙동강 수중 위 고가다리 위를 달리다 보면, 그때 마침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어서일까? 순간 강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문도 외어본다. 얼마 전 책에서 크리스 켈리라는 교수가 이야기한 ‘우리가 고통을 뚫고 달리는 한 가지 이유는, 달리는 즐거움이 고통을 넘어서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생각났다. 주변에 미리 들어온 사람과 자원봉사자들이 응원의 박수 소리에 힘을 얻어 드디어 결승선을 밟는다. 4시간 가까이 36km의 먼 길을 달려준 두발에 감사하고 흐르는 땀을 닦아본다. 뭔가 해낸 느낌이다. 결승선에 도착한 사람들은 모두 시원한 생수를 몇 컵이고 들이킨다. 푸짐하게 주는 국밥 한 그릇을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뚝딱이다.

장거리를 달린 후 먹는 국밥은 정말 꿀맛이다. 이맛에 힘들게 달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큰 행사를 외부의 지원 없이 치러내는 조직력이 대단하다. 식사와 도중 간식 등도 회원들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몇 번 행사를 참여하면서 늘 고마운 마음에 다음에는 나도 여건이 되면 봉사를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행사를 주관한 대구마라톤협회 이창호(61) 회장은 성황을 이뤄준 회원들과 대구 및 인근 동호인 참가자 여러분께 감사함을 표하고, 11월 10일 대구마라톤협회에서 주최하는 제15회 달구벌마라톤대회에도 많은 참석을 당부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오늘 같이 250명 이상 장거리 훈련을 하는 가치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봤다. 그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은 우선 다른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되며, 달리기를 통하여 앞으로도 건강을 잘 유지하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분명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이런 행사에 각 지자체에서도 복지적 차원에서 시설제공, 도로정비 등을 지원하고 또한 권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