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여성의 성적 문제를 제기한 영화 “자유부인”
1950년대 여성의 성적 문제를 제기한 영화 “자유부인”
  • 김병두 기자
  • 승인 2019.09.17 13:4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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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된 교수부인의 춤바람을 그린 정비석 원작소설 ‘자유부인’을 영화화하여 당시 유부녀의 탈선과 성개방으로 사회적으로 격렬한 논쟁과 파장을 불러일으킨 영화

1956년 한형모 감독이 박암, 김정림 주연의 자유부인을 영화화하였다. 교수 부인인 가정주부 오선영이 양장점에서 일하다 옆집 청년에게 춤을 배우게 되고 춤바람이 난다. 교수는 제자인 젊은 여성과 잠시 사랑에 빠진다. 결국 선영은 사귀던 남자의 부인에게 봉변을 당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고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김정림은 실제 다방마담 출신으로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였으며 가수 백설희씨가 영화 속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특별 출연하였다. ‘자유부인은 서울의 수도극장에서 개봉하여 1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그해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를 하였다. 계바람, 춤바람, 치맛바람과 사치품 조장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대도시 주부들 사이에 춤바람을 성행시켰다. 교수 부인의 춤바람에 대해 서울대 황산덕 교수가 교수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정비석씨와 논쟁이 벌어지고 덕분에 소설의 판매와 영화의 흥행에도 도움이 되었다. 영화 평론가 김수남은 "자유부인은 그 시대 관객들의 공감대에 잘 부합된 영화로 한국영화의 멜로드라마 붐을 이루는 원천이 되었다고 하였다.

영화 '자유부인' 포스터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 영화 100년" 전시회에서  김병두 기자
영화 '자유부인' 포스터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 영화 100년" 전시회. 김병두 기자

‘자유부인’은 1954년 1월 1일부터 그해 8월 6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정비석의 소설을 영화화하였다. 연재 기간 동안 서울신문의 판매 부수가 급격히 늘었다가 연재가 끝나고 5만 2천여 부가 줄어들어 화제가 되었다. 단행본으로 출판된 ‘자유부인’은 14만 부가 팔려 출판 사상 최초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영화 '자유부인' 포스터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 영화 100년" 전시회에서  김병두 기자
영화 '자유부인' 포스터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 영화 100년" 전시회. 김병두 기자

한형모 감독은 촬영기사로 일하다 일본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성벽을 뚫고’, ‘운명의 손’, ‘청춘 쌍곡선’, ‘자유부인’, ‘순애보’ 등 18편의 연출작과 15편의 촬영작울 남기고 1999년 9월 세상을 떠났다. 특히 현대 풍속도를 묘사하는 데 있어 사건설정이니 인물의 성격분석에서 정확한 터치와 율동적인 수법을 능란하게 연출하였다.

영화속 교수와 아들의 동행 장면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 영화 100년" 전시회에서   김병두 기자
영화속 교수와 아들의 동행 장면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 영화 100년" 전시회. 김병두 기자

이후 ‘자유부인’은 1957년 김화량 감독의 김정림, 박암 주연의 ‘속편 자유부인’, 1969년 강대진 감독의 김진규, 김지미, 오영일 주연의 ‘자유부인’, 1981년 박호태 감독의 윤정희, 최무룡, 남궁원 주연의 ‘자유부인’, 1986년 박호태 감독의 최무룡, 이수진 주연의 ‘자유부인2’, 1990년 박재호 감독의 고두심, 강석우 주연의 ‘1990년 자유부인’이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