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초산’
장석주의 ‘초산’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9.25 09:49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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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무료 이미지

 

장석주의 ‘초산’

 

산통産痛이 오는지 개가 운다.

호소하는 듯 긴 울음이

딱딱한 내 몸통 속으로

밀려들어온다.​

 

초산이다, 개는 울음도 그친 채

고요히 새끼 두 마리를 낳고

엎드려 있다.

산 것이 새끼를 낳는 동안

소년가장 같은 땅강아지는 재개재개 기어가고

귀없는 풀들은 비스듬히 기운다.​

 

몸통 속에서 내 것이 되었던 울음들이

다시 몸통 바깥으로 밀려나가고

나는 미역국을 끓이러

부엌으로 간다.​

 

등뒤 칸나꽃이 투명한 공기 속에서

유난히도 붉은 저녁이다.

 

시집 『붉디 붉은 호랑이』 애지. 2005. 12. 15.

 

만삭의 몸으로 이삿짐을 쌌다. 그 밤만 지나면 새 발령지로 옮겨가야하는데 양수가 터졌다. 밤중에 쌀뜨물 같은 것을 한 요강이나 쏟았다. 어린 임신부는 진통이 없어서 그게 소변이려니, 태무심했다. 다음날 주인집 아주머니께 말씀드리자, 큰일 났다면서 당장 병원 가라고 호통을 쳤다. 남편은 이사를 하고 나는 앞집 사모님 손 붙잡고 택시를 불러 검진 다녔던 병원으로 갔다. 진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양수가 다 흘러버려서 태아가 위험하다며 큰 병원으로 보내졌다. 결국 제왕절개로 조산(早產)을 했다. 어미와 자식의 만남이란 그렇게 힘들고 아픈 고난의 대가가 따르는 일이었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여성 독자라면 이 시가 더 깊이 와 닿지 않을까 싶다. 산통을 견디는 개처럼 안으로 삭였던 긴 울음이 뼛속에서 우러나올지 모른다. 새끼 두 마리를 무사히 낳고 널브러져 있는 장면의 이미지가 선명히 그려진다. 몸 푼 어미 개의 고통을 지우려는 듯 시인은 짐짓 곤충인 땅강아지가 기어가는 모습을 재미있는 의태어  ‘재개재개’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산고의 울음을 듣지 못했을 귀 없는 풀들까지 비스듬히 기울어 초산의 과정을 지켜본 것이겠다. 무릇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 그만큼 세상의 모든 처음은 위대하다. 투명한 공기 속에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