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25)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9.02 08: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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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끝없는 경쟁과 싸움의 연속이다. 인생에서 누가 이겼느냐, 몇 번 이겼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겼느냐, 무엇을 얻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서로가 양보하고 져주는 것이 결국 서로가 이기는 길이 될 수 있다.

젊은 사냥꾼이 오리 사냥을 갔다. 날아가는 청둥오리를 총으로 쏘아 맞혔는데 오리가 마을의 어떤 집안으로 떨어졌다. 사냥꾼이 그 집 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주인이 나왔는데 보니 늙은 영감이었다.

사냥꾼이 오리를 달라고 하니 영감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자기 집안으로 떨어졌으니 자기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자기가 쏘아 맞힌 것이니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감도 고분고분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시비가 격해지자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사냥꾼이 늙은 사람이 고집만 부린다며 영감을 몰아세웠다. 그리고 법대로 하자고 으름장을 놓았다.

영감은 기분이 상했지만 참으며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주먹대결로 결판을 내자는 것이었다. 서로 상대방 얼굴을 세 대씩 가격하여 항복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젊고 덩치가 큰 사냥꾼은 늙고 왜소한 영감을 훑어보면서 좋다고 하였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영감이 먼저 시작하라며 얼굴을 내밀었다.

영감이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사냥꾼의 얼굴을 향해 첫 번째 주먹을 날렸다. 약간의 충격을 느낄 정도였다. 이어 두 번째 주먹이 날아들었다. 정신이 조금 혼미했다. 세 번째 주먹이 정통으로 얼굴을 맞혔다. 사냥꾼이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일어섰다.

다음은 사냥꾼의 가격 차례이다. 영감은 의외로 태연한 자세로 한번 쳐보라고 하였다. 사냥꾼은 한 방으로 끝내겠다는 각오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냥꾼이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영감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잠깐! 좋소. 내가 졌소이다. 오리를 가져가시오하며 오리를 꺼내 주었다.

사냥꾼은 오리를 돌려받았지만 왠지 기분이 씁쓸했다. 과연 자신이 싸움에서 이긴 것인지 진 것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반대로 영감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승자가 누리는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인생에 영원한 승자와 패자는 없다. 승자와 패자의 구별 기준이나 원칙도 없다. 승자가 패자가 되기도 하고 패자가 승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재산이 많거나 권력이 있다고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도 일순간에 재산을 잃어버리거나 범죄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력을 부리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던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던 나폴레옹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고 쓸쓸한 유배생활로 생을 마감했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 대표적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알프스를 넘고 있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위키백과
알프스를 넘고 있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위키백과

 

우리나라 선비들처럼 비록 가난하고 권력이 없지만 건강하고 마음이 평안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세계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이 거리의 통속에서 개처럼 살고 있는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ēs)의 삶을 부러워했다는 사실에서 어떤 삶이 진정한 승자의 삶인지를 알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3세 위키백과
알렉산드로스 3세 위키백과

 

인생은 긴 마라톤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승부는 이겨야 한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은 승부는 져도 된다. 오히려 져 주어야 할 때도 있다. 무엇이 중요한 승부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삶을 사는 지혜이다. 이기는 방법도 지혜이지만 지는 방법도 지혜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달리기 경주를 했다 하자. 아버지가 이겼다면 아버지는 과연 승자일까?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이겼다면 아들은 자신이 졌다는 실망감과 우울감에 빠질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도 줄어들 것이다. 반대로 아버지가 졌다면 아들은 자신이 이겼다는 자신감과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 이때의 진정한 승자는 아들보다 아버지일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단순히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달리기를 통해서 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아들과 함께 뛰면서 교감을 나누고 친밀감을 도모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다. 따라서 아버지는 사소한 목적에서 져주고 중요한 목적에서 이기는 승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특히 전쟁에서 진정한 승자란 없다. 모두가 패자인 셈이다.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194592일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미국은 이날을 승전일로 지정했다. 당시 건국 전이었던 중국은 항복 문서 접수일인 93일을 전승절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참전국가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승전일은 없다. 대신 일본 천왕이 항복을 선언한 8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북한은 6.25전쟁 휴전일인 727일을 승전일로 하고 있다. 수천만, 수백만 명의 인명을 살상한 전쟁에서 과연 승자가 있고, 승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지는 법도 알아야 한다. 스키를 배울 때 스키를 잘 타는 법도 중요하지만 넘어지는 법도 중요하다. 미식축구에서 공을 잘 던지고 차는 법보다 쓰러지고 부딪히는 법부터 먼저 배운다. 중학교 체육시간에 유도를 배운 적이 있다. 상대방을 공격하고 제압하는 기술은 지금의 기억에 없고 오로지 낙법 연습한 기억만 남아 있다.

이기는 방법도 올바른 방법으로 이겨야 한다. 부정과 불의로 이기는 것은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없다. 펜싱 경기에서 투셰(touche)라는 용어가 있다. 칼끝이 예민하고 속도가 빠른 펜싱경기에서 상대편의 칼이 자기 몸에 접촉되었는지 모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칼을 맞은 사람이 신사답게 자진해서 터치되었다는 의미로 투셰라고 외치며 칼을 하늘 방향으로 올려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다.

축구의 박지성 선수는 상대방의 심한 태클로 넘어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신경 쓰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뛰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것도 경기 조건의 하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일부 선수들이 태클당한 것에 집착하여 공보다 상대 선수에 대한 보복에 신경 쓰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인생은 끝없는 경쟁과 싸움의 연속이다. 인생에서 누가 이겼느냐, 몇 번 이겼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겼느냐, 무엇을 얻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서로가 양보하고 져주는 것이 결국 서로가 이기는 길이 될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政治)는 양보와 타협은 사라지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형국이다. 목적의 진정성과 방법의 순수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성에 의한 올바른 정치(正治)가 아니라 감정에 의한 정치(情治), 증오로 점철된 증치(憎治)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 패망의 원인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에 있음은 역사가 말해준다. 편 가르기 식으로 국민을 이간시키고, 진실을 은폐하여 불신을 조장하고, 이분법으로 갈등을 양산하는 정치 행태는 국민을 병들게 하고 국가 안위를 위태롭게 한다. 양보와 타협으로 서로가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