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법성포를 가다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법성포를 가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08.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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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불교는 서기 384년 침류왕 원년 인도 승려 마라나타에 의해서 전해졌다.
법성포는 백제 불교의 최초 도래지다.
조기가 굴비가 된 사연은 이자겸에 의해서 생겨났다.
부영루와 사면대불상이 보이는 풍경. 이원선 기자
부영루와 사면대불상이 보이는 풍경. 이원선 기자

백제의 불교는 인도 간다라 지방의 승려인 마라나타(1)가 실크로드를 거쳐 동진에 도착한 후 해로를 거쳐 법성포((法聖浦, 옛 지명 : 아무포(阿無浦))를 통해 들어옴으로써 전래되었다. 이 때가 서기 384년으로 백제 침류왕(枕流王, ?~385)원년이다.

부영루를 오르는 계단. 이원선 기자
부영루를 오르는 계단. 이원선 기자

법성포의 옛 지명인 아무포는 아미타불의 의미를 함축한 명칭이다. 그 후 성인이 불교를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으로 현재의 법성포((法聖浦)로 개칭 되었다. 이를 미루어 법성포는 백제는 물론 한국의 불교문학사저, 정신문학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영광군에서는 이 유서 깊은 곳에 후세에 길이 전해질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라는 기념비적인 명소를 건립 중에 있다.

부영루와 사면대불상. 이원선 기자
부영루와 사면대불상. 이원선 기자

불교가 백제의 침류왕 원년에 법성포를 통해 도래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해동고승전에 의하면 석 마라난타는 인도 출신 승려이다. 그는 신통한 힘을 지녀 온갖 일을 해내는데 그 능력을 헤아릴 수 없었다. 스님은 불교를 전파하는데 뜻을 두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교화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석 마라나티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함으로써 후일 백제는 웅장하면서도 화려하고, 화려하면서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간다라 유물관. 이원선 기자
간다라 유물관. 이원선 기자

백제 불교의 도래지 조성에 대한 대부분의 건축양식은 인도의 간다라지방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가 간다라 유물관이다. 유물관에 전시된 불두(佛頭)의 대부분이 간다라 지방의 스님들을 나타내고 있어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박물관은 월요일과 공휴일 등을 제외한 연중 무료로 개방되며 고대의 간단한 백제의상이 있어 체험할 수 있으며 커다란 마라나타 존자의 상이 있어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현재는 적극적인 홍보 중이라 안내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한다. 한편 유물관 안에는 간단한 영상 시설이 있어 백제 불교 도래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이국적인 형상의 불두. 이원선 기자
이국적인 형상의 불두. 이원선 기자
간다라 지방 형싱의 탑. 이원선 기자
간다라 지방 형싱의 탑. 이원선 기자

박물관 조금 위쪽에 위치한 탑원(塔圓)은 간다라 지방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간다라 지역의 사원 유구(遺構) 가운데 원형 보존이 잘된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모방하여 조성한 탑원이다. 따라서 같은 석탑이지만 우리나의 석탑과는 그 외형이 달라 이국적으로 다가든다.

부용루에서 본 사면대불상. 이원선 기자
부용루에서 본 사면대불상. 이원선 기자

현재 이곳으로 마라난타란 절()을 건립 중이며 사면대불상(四面大佛象)의 거대한 공사가 진행 중이라 도로가 파손되어 있는 등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다. 사면대불상은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관음, 세지보살을 좌우보처(左右補處)로 마라난타 존자가 부처님을 받들고 있는 형상을 다른 한 면에 배치하고 있는 형식으로 약식 석굴사원의 형식을 띤 독특한 형태의 간다라 양식을 모방하고 있다. 그 높이는 23.7m에 달한다.

부용루 벽면에 조각 된 부처님상, 기복사상으로 인해 코와 손에서 복을 구한 탓에 까맣게 퇴색되있다. 이원선 기자
부용루 벽면에 조각 된 부처님상, 기복사상으로 인해 코와 손에서 복을 구한 탓에 까맣게 퇴색되있다. 이원선 기자

현재 석가모니를 주불로 하는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은 건립되지 않았으며 부용류(芙蓉樓)가 있어 2층에 주불로 부처님을 모시며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다. 부용루는 우리나라 건물 양식이나 누각의 벽면에는 간다라 양식의 불전도 부조 조각이 23면에 걸쳐 조각 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부처님의 전생의 인연담과 일대기 등등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부용루 2층에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이 있다. 이원선 기자
부용루 2층에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이 있다. 이원선 기자

이 외에도 영광에는 백제 최초의 사찰인 불갑사와 원불교 영산성지, 기독교인 순교지, 내산선원 등등의 관광지가 있다.

가계 입구에서 만난 보리굴비. 이원선 기자
가계 입구에서 만난 보리굴비. 이원선 기자

또한 전남 영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조기다. 굴비라는 이름은 고려 중기의 권신이며 예종과 인종의 동시 장인으로 있던 이자겸(李資謙)이 난을 일으켰다가 이곳으로 유배를 오면서 생겨났다. 당시 이자겸은 이곳에서 맛을 본 조기의 맛이 특출한 지라 임금께 진상을 하면서 굴비(屈非 : 아직 굴하지 않았다는 뜻)라 지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중 으뜸으로 치는 것이 보리굴비(주2)로 이자겸은 권토중래의 꿈을 품었으나 중병을 얻어 이곳에서 죽고 만다.

24가지 기본 반찬의 굴비정식. 이원선 기자
24가지 기본 반찬의 굴비정식. 이원선 기자

조기가 본고향인 영광에서 맛보는 굴비는 어떤 맛일까? 굴비정식은 기본반찬이 24가지로 가격은 1인당 25,000원 선이다. 먹는 방법은 서빙(serving)하는 직원이 알려 줌으로 먼저 맛을 보는 등 수저를 놀리는 것은 삼가야 한다. 또한 찌개를 끓이는데 사용하는 연료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꺼지는 고체연료로서 가열 등의 위험이 없으므로 안심하여도 된다. 단지 더 끓이고 싶어도 못 끓이는 단점이 있다.

굴비정식으로 나온 굴비. 이원선 기자
굴비정식으로 나온 굴비. 이원선 기자

일행 중 가장 늦게 먹어야 하는 간장게장을 먼저 먹는 통에 눈총을 받는 등 웃음을 자아내게 된 것은 주의 사항을 귀담아 듣지 않은 때문이다.

기복사상으로 부처님 발자국 형상에도 동전이 들어있다. 이원선 기자
기복사상으로 부처님 발자국 형상에도 동전이 들어있다. 이원선 기자

 

(주1)마라나타 :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마라난타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동학(童學)’이 된다고 하였다. 또 다른 뜻으로 "성령이여! 어서 오소서!" 라는 뜻의 히브리어도 있다.

(주2)보리굴비 : 해풍에 말린 참조기를 항아리에 담고 보리를 채워 보관하여 곰팡이가 나지 않게 숙성시킨 굴비를 칭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