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에서 만난 어머니, 김순동 작가
해바라기에서 만난 어머니, 김순동 작가
  • 우순자(파란꿈) 기자
  • 승인 2019.08.25 13:0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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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갈래 길을 가는 김순동 교수를 찾아서

향일화(向日花)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한 일편단심의 꽃, 태양처럼 뜨거운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인 해바라기를 말함이다. ‘해바라기’라고 하면 네덜란드 화가 고흐를 떠올린다. 그는 친구인 고갱을 맞을 준비로 자신의 작업실을 장식하기 위해 해바라기를 그렸다고 한다.

대구에도 화가라고 이름난 사람은 아니지만 해바라기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 40여 년간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김순동(75) 전 교수다. 김 전 교수는 식품가공학 전공으로 영남이공대학을 시작으로 대구가톨릭대학교, 명지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김순동 교수가 해바라기를 그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우순자 기자

어두컴컴한 그의 지하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눈앞이 환해진다.

1970년에 개봉된 소피아로렌 주연의 해바라기(sunflower)가 우크라이나의 넓고 광활한 해바라기 밭을 배경으로 했다면, 그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바라기 밭을 비롯해 화병에 꽂힌 해바라기 등 수십 점의 해바라기가 노란 꽃물결을 이룬다.

해바라기 작품들 - 우순자 기자
작업실에 있는 해바라기 작품들. 우순자 기자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강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메라가 흔치 않던 시절, 연구 자료를 A4용지에 그림으로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고, 해바라기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다가 옥수수 대궁처럼 말라죽은 해바라기를 보았어요. 그 해바라기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씨 몇 개를 가져와 집에 심었습니다. 해마다 그 모습을 보다가 3년 전부터 해바라기를 그리게 되었어요.”

그가 첫 작품으로 그린 해바라기는 고흐의 해바라기다. 그 그림은 그의 아내가 경영하고 있는 유치원 현관에 걸려있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가’라는 말은 그만한 이력이 붙었음이다. 사진 역시 강단에서 연구용으로 많이 찍었다. 배춧잎의 조직을 알기 위해서는 광학으로, 현미경으로, 전자 현미경으로 다양하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진을 접했고, 동료 교수들과 취미활동으로 지금까지 하고 있다.

특별히 하나의 주제를 정해 찍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관심 분야가 플라타너스 표피(表皮)라고 한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의미를 부여하는데 작가는 “많은 식물들이 그렇지만 특히 가로수로 심어진 플라타너스가 푸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움직일 수 없고, 매연에 시달리고, 겨울이 되면 가지치기를 당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혹시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 모양의 표피를 찾아 찍은 것이 2,000매 정도 됩니다”라고 했다. 희수(喜壽)를 바라보는 나이에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타너스에 관심이 많아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 우순자 기자

그는 또 제자의 권유로 수필에 입문해 두 해 전에는 수필과 비평에 <민들레 김치>로 등단한 수필가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출사(出寫)가려면 바쁠텐데 글까지 쓰면 힘에 부치지 않느냐고 하니 되레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걸요”라고 했다. 그는 '수필사랑'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수필은 나를 돌아보며 마음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틀에 한 편씩 쓰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퇴고에 비중을 두며 한 달에 한두 편은 쓰지요"라고 했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수필만치 좋은 것이 없다고 수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우순자 기자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수필 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수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우순자 기자

그림을 그리다가, 글을 쓰다가 휴식이 필요하면 그는 색소폰을 분다. 걸음마 단계이겠거니 했는데 벌써 강산이 한 번 하고도 반은 더 바뀔 세월이 되었단다.

한곡 연주해 줄 수 있느냐의 필자의 부탁에 스스럼없이 프랑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연주한다. 내친 김에 한 곡 더 부탁하니 윤시내의 ‘열애’를 들려준다.

그림을 그리다가, 글을 쓰다가 틈틈이 색소폰을 통해 힐링한다는 김순동 교수 -우순자 기자-
그림을 그리다가, 글을 쓰다가 틈틈이 색소폰을 통해 힐링한다는 김순동 교수. 우순자 기자

하나의 취미생활도 꾸준히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림, 사진, 수필, 색소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다. 그의 그런 열정이 나이를 잊고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