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문화의 늪
[인문의 창] 문화의 늪
  • 장기성 기자
  • 승인 2019.08.27 14:08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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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골드 러시(gold rush) 이후 많은 이주민들이 캘리포니아 지방에 정주하였다. 이곳에 정주한 라틴 계열은 지중해식 농업, 튜턴 계열은 혼합 농업, 남방계 중국인은 벼농사, 북방계 중국인은 밭농사를 주로 하는 등 자기 문화권에서 행하던 농경 형태가 그대로 신대륙에 옮겨놓았다. 이와 같은 농경 방식의 차이점이 ‘문화 결정론’을 설명하는데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인간에 대한 뒤르켐의 기본 관점은 문화결정론이었다. 문화결정론이란 개인의 행동이 그가 속해있는 문화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인간에 대한 뒤르켐의 기본 관점은 문화결정론이었다. 문화결정론이란 개인의 행동이 그가 속해있는 문화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위키백과

TV에 뉴스특보가 떴다.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총기 사고가 났다. 벌써 수십 명이 사망하고 아직도 총소리가 계속된다는 끔찍한 긴급뉴스이다. 범인은 아시아계 인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곧이어 주범은 중국계 왕씨 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찰나의 순간, 무의식적으로 안도했다. 한국인이면 어쩔 뻔 했을까하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었다. 간만에 오싹함이 등골을 스치듯 지나갔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현지 경찰이 긴급 브리핑을 했다. 범인은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 조승희이며, 현재 버지니어 공과대학 영문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두 정의 권총을 소지하고 기숙사로 들어가 먼저 두 명을 총으로 쏘아 사살하였으며, 2시간 반 후 수업 중이던 강의실 몇 곳을 오가며 총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한 뒤 자살했다. 미국 대학생 32명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던 중에 잔혹하게 희생됐다. 2007년 4월 24일의 일이다.

이 사건을 접한 한국 교민들은 충격과 두려움에 떨며, 보복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현지 한국 유학생들은 해당 대학을 떠나 몸을 숨겼고, 주미 한국대사관은 교포들에게 외출 자제령을 내렸다. 재미 교포든 고국민이든 모두가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졌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한국인들의 공황상태를 의아하다는 듯이 보도했다. 미국의 타임지는 ‘한국인들, 집단 죄의식 느껴’라는 표제어를 맨 상단에 올렸다. 미국의 문화평론가 버거선은 ‘ 한국인들 지나친 한국걱정’ 이라는 논설을 쓰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미국사회 자체의 문제이며, 한국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것은 ‘오버액션’이란 논평을 냈다. 결국 이 사건은 현지 교포들이나 한국에 별다른 나쁜 이미지나 후유증을 미국사회에 남기지 않고 종결되고 잊혀졌다.

일본에 유학 중인 한국 유학생 이수현군이 도쿄 시내 전철역에서 술에 취해 철로에 추락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철로로 뛰어들었다가 전철에 치여 숨졌다. 이 사건 이후, 이수현 군은 의인(義人)으로 인정되어 일본 정부에서 훈장과 감사패를 받았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들은 “일본인들이 정의와 양심, 용기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됐다”라고 보도했다. 냉랭하던 한일관계가 해빙되기 시작했으며, 일본 관방장관 후쿠다는 “이 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한일우호 친선을 위해 더욱 힘쓰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영화감독 하나도 준지(花堂純次)는 이수현 사건을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제작했으며, 일왕부부가 시사회에 직접 참석했다. 추모음악회도 여러 도시에서 개최됐다.

2002년 경기도 양주시에서 친구 집에 놀러가던 미선과 효선이라는 여중생 2명이 훈련을 마치고 귀대하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한국에서 공무집행 중에 일어난 범죄는 ‘SOFA협정’(주한미군지위협정)에 따라 미국법원에서 일차적 재판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이 사건에 책임 있는 두 명의 미군 병사를 미군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하였고, 이어 무죄 평결이 내려졌다. 무고한 두 여중생의 생명이 희생됐지만 미국의 누구도 죗값을 치르지 아니하자,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고 반미감정과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양키 고 홈’이란 구호가 광화문광장에서 펄럭였다. 반미시위가 계속 이어지자,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유감을 표명했다.

위의 세 사건은 모두 팩트에 근거한 사실이다. 이 사건들을 보면서 어느 국가의 국민이 더 지혜롭고 더 이성적으로 행동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행동을 하게 하는 기제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뇌(腦)의 상층부에서 무엇이 이런 행동을 하도록 명령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 말이다.

만약에 이수현이 미국 지하철에서 취객을 구했고, 조승희가 일본의 대학교정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미국령 괌에서 미국 여학생 두 명이 공무상 훈련 중인 한국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똑같은 사건이 다른 장소와 다른 문화권에서 벌어진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문화결정론’(Cultural Determinism)이라 했다. 인간의 행위는 그들의 문화적 배경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가 동계 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대한민국은 모두 기뻐했다. 김연아는 대한민국이었고, 대한민국은 김연아였다. 조승희가 사고를 냈을 때도 우리는 모두 조승희가 되어야만했다. 수능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면, 그 학교 전체가 흥분에 휩싸인다. 현수막을 몇 달씩 교문위에 붙어놓고 구성원 모두가 승자의 정체성을 향유한다.

미국의 수영선수 펠프스는 역대 올림픽 경기에서 19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 업적은 펠레스 개인의 기쁨이지 미국의 영광으로 연결시켜 생각하는 미국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노벨상을 받은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그가 다닌 스위스 취리히 공대와 연계시켜 생각하는 독일 사람도 거의 없다. 오직 노벨상과 개인 아인슈타인을 연계시킬 뿐이다.

무엇이 우리 뇌의 상층부에 앉아 이런 행동을 가능하게 할까? ‘문화’이다. 우리나라(일본 포함)의 ‘집단주의 문화’와 미국(유럽 포함)의 ‘개인주의 문화’가 뇌의 상층부에 걸타고 앉아서 인간을 조종하기 때문이다. 집단주의는 철저히 ‘개인’이 아닌 ‘우리’ 중심적이다. 국가나 집단이 개인보다 존중되는 사회를 말한다면, 개인주의는 국가보다 개인이 존중된다는 뜻이다. 한국의 집단주의 지수는 전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다. 반대로 개인주의 지수를 보면 미국은 스위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다. ‘조승희 사건’이 만약에 일본에서 벌어졌다면, 한일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을 것이고, ‘이수현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미국사회는 이 미담(美談)을 한국과 연계시켜 보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화는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전 세계 결혼식 문화나 장례식 문화를 서로 비교할 수는 있지만 호불호로 평가할 수 없듯이 말이다. 나는 오늘도 ‘문화의 늪’에 빠져 한국문화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깥세상을 보고, 그저 로봇처럼 ‘문화’가 시키는 대로 행동할 따름이니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