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을 가다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을 가다
  • 김병두 기자
  • 승인 2019.08.21 15:4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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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한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전시회!

1919년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7월 27일부터 9월1일까지 개최되고 있다. 전시회는 100년의 영화 역사를 7개의 시대별로 영화포스터를 전시하고 그 시대별 유명 감독과 배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전경     김병두 기자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전경. 김병두 기자
전시회장 내부 모습  김병두 기자
전시회장 내부 모습. 김병두 기자

 

1919년∼1945년 한국영화의 시작에서 일제 강점기 민족의 절규

1919년 우리 민족의 자본으로 최초의 활동 사진극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상영되었고, 1926년 민족의 울분과 한을 그린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 1932년 이규환의 ‘임자 없는 나룻배’ 등 1930년대 초까지 무성영화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935년 ‘춘향전’이 최초의 발성영화로 제작되었다.

 

지금까지 제작된 영화 '춘향전' 포스터  김병두 기자
지금까지 제작된 영화 '춘향전' 포스터. 김병두 기자

 

1945년∼1949년 해방과 이념갈등, 항일소재의 영화

일제 말기 전시체제는 영화제작 기반을 무너뜨렸다. 이후 친일감독으로 낙인찍힌 최인규 감독은 속죄의 마음으로 항일 소재의 ‘자유만세’를 만들고 해방과 함께 안중근, 윤봉길 등 독립투사의 삶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다.

 

1950년∼1959년 한국전쟁, 피난, 휴전, 미군정시대의 영화

해방 후 한국영화의 부흥을 도모했지만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한국 최초의 전쟁영화 ‘삼천만의 꽃다발’이 부산에서 만들어진다. 전쟁 직후 지리산 빨치산 토벌을 다룬 ‘피아골’은 이념과 인간성의 갈등을 표현한 우수작품으로 평가받았다.

 

1960년∼1969년 한국영화의 성장과 르네상스

1960년 92편의 영화제작편수는 1969년 229편으로 늘어나고, 관객 수도 급증하여 1968년에는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회수가 6회에 이르러 영화는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최고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특히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 강대진, 이만희, 김수용, 정진우 등 거장 감독들이 등장하여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견인한다. 또한 배우들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여배우로는 최은희 김지미의 뒤를 이어 문희, 남정임, 윤정희가 트로이카 여배우의 전성시대를 연다. 남자 배우로는 김승호 신영균, 김진규, 남궁원의 뒤를 이어 스타 신성일의 시대가 활짝 열린다. 

 

60년대 영화 포스터     김병두 기자
60년대 영화 포스터. 김병두 기자
60년대 청춘영화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 포스터   김병두 기자
60년대 청춘영화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 포스터. 김병두 기자

 

1970년∼1989년 군사정권, 산업화 시대의 영화

1970년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였다 .1969년 229편의 영화편수는 1975년 83편으로 줄어든다. TV 보급과 유신이후 엄격한 검열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젊은 감독들이 청년문화를 기치로 새로운 감성과 표현방식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가 대표적이다. 70년대 후반에는 ‘고교얄개’, ‘진짜 진짜 사랑해’ 등 하이틴 영화도 등장했다.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가 신트로이카 여배우 시대를 열었고 신영일, 신일룡, 하명중, 이영하, 안성기, 강석우 등 신인 남자 배우들이 등장한다. 1980년대에는 안소영이 출연한 애마부인 등 애로 영화가 홍수를 이루었다.

 

1974년 이장호 감독의 대표작 "별들의 고향"  김병두 기자
1974년 이장호 감독의 대표작 "별들의 고향". 김병두 기자
70년대 하이틴 영화의 포스터   김병두 기자
70년대 하이틴 영화의 포스터. 김병두 기자
85년도 영화 '어우동' 포스터  김병두 기자
85년도 영화 '어우동' 포스터. 김병두 기자

 

1990년 ∼1999년 한국영화산업의 현황, 참신한 시선들

1990년대 비디오 시장이 확대되고 1995년 케이블 TV가 출범하자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뛰어든다.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가 첫 시작이었다. 1996년 영화사전 심의는 위헌판결을 받게 되고 신인감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독립영화가 등장한다. 배우로는 강수연, 황신혜, 최명길, 이미숙, 최진실과 박상민, 박중훈, 임성민, 손창민, 최민수 등이 왕성한 활동을 한다.

 

90년대 영화 포스터  김병두 기자
90년대 영화 포스터. 김병두 기자

 

2000년∼2019년 한국영화의 도약과 천만관객의 시대

1998년 멀티플렉스 극장이 등장하면서 영화산업의 규모가 커진다. ‘쉬리’를 비롯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작되고 2003년 ‘실미도’가 천만 관객 동원 시대를 연다. 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임권택, 김기덕 감독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또한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설경구, 김윤식, 이정재 다양한 배역의 남자 배우들이 왕성하게 활동한다.

마지막 출구로 나오면 복도 벽에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당시 유명했던 추억속의 극장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구의 한일극장 사진도 있다. 그리고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19편의 명단이 전시되어 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들  김병두 기자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들   김병두 기자

 

추억의 영화관 중 대구 한일극장 모습  김병두 기자
추억의 영화관 중 대구 한일극장 모습. 김병두 기자

 

흔히 영화는 인생이다. 인생은 영화라는 말을 한다, 영화는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함께 한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이번 전시회가 한국영화 100년 속의 배우, 감독 등 당대 영화인들을 추억할 수 있는 감동의 시간이 될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영화의 포스터가 많이 부족한 면도 있었다. 앞으로 영화 포스터 전시회가 열린다면 영화 포스터를 개인적으로 소장한 분들이 많이 참여하여 다양하고 풍성한 전시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