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여봉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제막
미대 여봉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제막
  • 권오섭 기자
  • 승인 2019.08.1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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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묻혀진 마을단위 만세운동 8인 애국지사 기려
공산지역 뜻있는 사람들 힘 모아 비 건립위원회 발족 건립
여봉산 유적지 표지석과 독립만세운동길 안내석도 설치

‘미대마을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상호, 이하 위원회)'는 8월 15일 오후 3시 대구 동구 미대마을 앞 체육공원에서 배기철 구청장과 오세호 구의회 의장을 비롯한 내빈, 지역주민, 유족 및 인천 채씨 문중원, 건립위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미대 여봉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기념비는 무게감이 있고 편안하며 진취적인 세로형 오석으로 높이 410cm, 넓이 130~170cm정도이며, 기념비 건립과 함께 미대동 8인 애국지사 마을과 여봉산에 유적지 표지석을 세워 그동안 잊혀졌던 3․1만세운동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하였다.

미대마을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26일 미대마을(대구시 동구 미대동) 채갑원, 채희각, 채봉식, 채학기를 비롯한 젊은 청년 4명이 채갑원(당시 26세)의 집에 모여를 하고 밤 10시경 미대동 동방 여봉산(礪峰山)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27일 낮에도 이어졌으며, 28일 밤에는 1차 4명과 채경식, 채송대, 채명원, 권재갑 등 4명이 합세하여 8명이 함께 올라가 일제히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들은 곧 팔공주재소 일본 군경에 의해 검거되어 대구 일본군 헌병대로 압송되었으며, 그해 5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틀 간 독립만세를 외친 주동 4명에게는 징역 8월, 하루 만세를 외친 4명에게는 징역 6월의 형을 선고하여 대구 형무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92년과 1995년에 걸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위원회는 지난 2월 3․1운동과 지역에 애착이 많은 11명이 뜻을 모아 위원회를 발족하고 7개월 동안 대구시 기념비 심의 등 제반 절차와 준비를 거쳐 3․1운동 100주년 및 제74주년 광복절과 특히 일제의 한국 ‘백색국가’ 제외 경제보복을 자행하여 반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이 때 대구에서 처음으로 민간단체에서 100년간 묻혀져온 8인 애국지사의 3․1운동 기념비 건립 성과는 그 어느 기념비 보다 뜻 깊고 의미 있으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지역의 애향․애국 자원봉사단체인 광복소나무사랑모임(회장 최주원)은 지난 2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미대마을에서 여봉산 정상까지 약 2km를 ‘여봉산 독립만세운동길」로 명명하였으며, 기념비 건립에 맞추어 길 안내석을 설치하여 앞으로 시민들이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따라 쉽게 걸어 보고 애국정신을 느껴볼 수 있게 하였다.

이상호 위원장은 “그동안 몇명만 알고 묻혀져 있었던 미대 여봉산 만세운동이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세상에 널리 들어났다. 오늘 기념비 건립으로 지역과 대구사회에 알려지게 되어 매우 다행이다"며 "앞으로 대구시민들이 애국지사의 숭고한 애국․충절정신을 본받아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기철 구청장은 “위국헌신의 정신으로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애쓰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희생과 공헌에 보답하고 합당한 예우를 해드리고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