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연예 예술상을 수상한 '박수미' 대구연예인 연합회 회장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을 수상한 '박수미' 대구연예인 연합회 회장
  • 염해일 기자
  • 승인 2019.08.17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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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분과
박수미 회장(염해일 기자)

지난 8월 13일(화)에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을 수상한 박수미 대구연예인 연합회 회장에 대한 특별취재를 하기 위하여 신남역 남산초등학교 부근에 있는 '박수미 가요학원'을 찾아갔다. 박수미 가요학원으로 들어가니 교습소 실내가 교습생들이 각종 대회에 나가 받은 상장과 상장을 받는 사진들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학원내부는 단체 연습실, 개인 연습실, 사무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박수미 회장이 개인 연습실에서 노래방 기계와 전자 오르겐으로 교습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제25회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을 받고 있다(박수미 회장 제공)

-회장님이 올해 연예인으로서는 가장 큰 상인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을 받은 것을 축하합니다어떻게 그렇게 큰 상을 받게 되었습니까?

▶2019년 3월 24일 경기도 고양시 아름누리극장에서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부터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음악을 통한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하고, 중대구 지회 회장과 대구연예인 연합회 회장으로 한국연예 예술인 총연합회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받은 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25회 대한민국연예 예술상으로 트로피를 받았다(박수미 회장 제공)

-사단법인 ‘한국연예 예술인 총연합회’에는 어떤 일들을 하나요?

▶한국연예예술인 총연협회는 연예활동의 질서 확립 및 대중예술의 진흥도모를 목적으로 1962년 7월 10일에 설립된 연예예술단체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입니다. 한국연예예술인협회는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현인가요제 등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117 예총회관 503호에 있습니다. 한국연예 예술인 총연협회 대구지회는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문화예술회관 내 제2예련관 내에 있습니다.

중국 연길시 국제회의 예술센터에서 해외 공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박수미 회장 제공)

-사단법인 한국연예 예술인 총연합회에서는 해외 연찬회와 해외 공연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해외 연찬회와 해외 공연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2019년 3월 5일(화)~3월 9일(토)까지 라오스 비엔티엔/방비엔에서 3박 5일간 해외연찬회를 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28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연길시 국제회의 예술센터에서 해외 문화예술교류도 2018년 9월 17일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도 저를 포함하여 20명이 참석하여 공연을 하고 왔습니다. 그 외에도 몇 차례 해외 연찬회와 해외공연이 있었습니다.

가요교실에서 최신가요를 지도하고 있다(박수미 회장 제공)

-회장님은 가요교실 강사로 오래 전부터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요강사를 하게 된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1남 1녀의 가정주부로 라이브 카페에서 정식 전문가수로 활동하던 중 대구에 가요교실 붐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북비산 로터리에서 가요학원을 열어 주부들을 가르쳤습니다. 대구의료원, 노인대학에서 300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가요교실을 시작하면서 출장강사도 하였습니다.

-회장님은 가요교실 강사경력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사 경력을 말씀해 주세요.

▶곽병원 부설 운경건강대학 강사, 옥포면 주민자치센터 가요교실 강사, 가야대학 노인부설 강사, 달서구 노인복지회관 강사, 서문 여성가요대학 강사, 대구대학부설 평생교육원 강사, 구지농협/시지아카데미 강사, 담수회 가요교실/평생대학원 강사, 대구북구지회 부설노인대학 강사, 성주문화원 강사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곽병원 부설 운경건강대학 강사와 옥포면 주민자치센터 가요교실 강사 경력은 20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가요강사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일들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를 한 가지 말씀해주세요.

▶대구의료원 1층에서 가요교실을 하고 있을 때 2층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모두 내려와 노래를 같이 배웠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회장님이 박수미 가요학원을 언제부터 시작하였으며 가요학원을 하면서도 재미있었던 일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화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박수미 가요학원을 열어 개인지도를 한 것이 벌써 30여 년이 넘었습니다. 가요학원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다양합니다. 얼마 전에는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주방장을 하셨던 분이 찾아와 가요를 배우고 싶다고 하여 개인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이 성형수술을 하고 찾아왔습니다. 그 어르신은 운동으로 성형에 따라주는 몸매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이 젊게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가 좋았습니다.

박수미 회장님이 가요학원에서 개인지도를 하고 있다(염해일 기자)

-회장님에게 노래지도를 받은 사람들의 수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쯤 됩니까?

▶지금까지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5,000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개인 지도를 한 제자들 중 200~300여 명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가요강사와 직업가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보람을 느낀답니다.

-회장님이 각종 가요제에서 심사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가요제에서 심사를 하셨는지요.

▶내가 가요제 심사를 한 곳이 많습니다. 대덕가요제, 팔공가요제, 앞산 가요제, 대구주부가요제, 신천돌다리가요제, 대구가요제, 실버가요제, 트론가요제에서 500여 회 이상을 심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종 행사와 이벤트, 경로잔치, 동창회, 체육대회도 직접 주관하고 사회도 보고 있습니다.

박수미 회장님이 실버가요제에서 심사를 한 후 시상까지 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박수미 회장 제공)

-회장님의 주요 이력사항을 듣고 싶습니다.

▶1977년 KBS 오아시스 레코드 노래자랑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전속 가수로 데뷔하여 대표 음반으로 ‘타인이 될 수 없어요.’ ‘눈물의 입맞춤’이 있습니다. 1992년 대구시 연예협회 가수분과 위원장을 하였고, 1995년 가수분과 위원장을 하면서 대구가수의 날(12월 8일)을 제정하여 대구시에 등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996년 이후는 박수미 가요교실 운영, 대구노래 강사 협회 고문, 대구광역시 예술인협회 부지회장, 대구가수분과 연예협회 고문, 불교 참여연대 가수 단장, 중대구지회 21회장, 대구 총연합회 회장, 문학예술 회원을 역임하였습니다. 대구 유일 여성 전자 오르겐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전자오르겐으로 가요를 지도하고 있다(염해일 기자)

-회장님이 수필가로 등단을 하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수필가로 등단한 것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2010년에 계간 문화예술에서 제32회 신인상에 수필 ‘산사의 밤’ 외 1편을 응모하여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을 하였습니다. 수필가로 등단을 한 후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수필가로 작사를 많이 하여 작곡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작사, 작곡하여 부른 노래가 얼마쯤 되는지 말씀해 주세요.

▶수필가로 등단한 2010년부터 현재까지 50여 곡을 작사하였습니다. 제가 작사한 것은 모두 제가 작곡까지 하였습니다. 제가 작사, 작곡 한 곡 중에서 제가 직접 부른 노래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아끼는 곡이 ‘옛 친구’, ‘출가외인’, ‘못 잊을 내 고향’, ‘내 인생 나의 길’, ‘내 고향 영주’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있는 노래는 ‘옛 친구’입니다.

박수미 회장님의 수필가 등단증(박수미 회장 제공)

-회장님이 음악을 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중학교 3학년 때 대구 언니로부터 대구 KBS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신인가수를 뽑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락을 받고 고향 영주에서 대구로 와서 대구 KBS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실시하는 오디션에 참가하였습니다. 뜻밖에도 대상을 받게 되어 가수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식구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시간과 금전문제로 가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가수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결혼과 동시에 다시 가수의 꿈에 도전하였지만 시집식구들의 반대로 좌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시집식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업가수로 전환하여 라이브 가수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남 1녀를 둔 주부로 라이브 카페에서 정식 전문가수로 월급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회장님은 친정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3남 2녀 중에서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친정어머님이 혼자 사시다가 지난해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가장 역할을 하였습니다.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저를 찾으셨다고 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나요.

 

박수미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박 회장이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을 받은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 회장은 가요뿐만 아니라 연세 많으신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대구에서 영주까지 왕래를 하면서 어머님을 돌보시고, 유기견도 여러 마리 키우면서 생명의 소중함도 깨우치고 있다는 말씀을 듣고 나니 박 회장이 우러러 보였다. 

'박수미 가요학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학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