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갓진 길섶에 혼자라 외롭습니다. 부엉이 우는 밤이면 너무 무서워 누구 없나 깨금발로 둘러도 봅니다. 참으로 고맙게도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났습니다. 산꿩이 울어도 놀라곤 했는데 늑대 울음도 이제 겁나지 않습니다. 내 옆엔 믿음직한 호위무사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열심히 사랑하여 살림밑천인 큰딸이 태어나고 알토란 같은 아들도 보았습니다. 세상은 우리 둘만을 위해 있는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딸이 잘생긴 청년을 데리고 와서 죽도록 사랑한다며 결혼하겠다 해서 보냈지요. 이윽고 아들도 심성 고운 처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직장 따라 우리 곁을 떠나 서울에서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제 두 양주(兩主) 만 남았습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멎은 산골입니다. 젊은이는 다 대처로 떠나고 늙은이만 사는 "老人國"입니다. 갈매실 양반 박 영감은 아들 따라 부산으로 가고 큰골 댁은 딸네 집으로 가고. 우리도 아들이 하도 오라 해서 서울에 갔더니 사람 살 곳이 못되더라고요. 차가 하도 많아 어지러워서 못살겠고 공기가 탁해서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니 얼마나 좋던지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지요. 골골하던 영감이 떠났습니다. 우리 영감 理財에 어두워 그렇지 옥골선풍에 언변도 좋았지요. 근동 처녀들이 말카다 우리 영감 잡을라고 목 메단다 했으니까요. 시대를 잘못 태어나 그렇지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적어도 한 고을은 울릴 양반인디 다 팔자소관이지요. 어젯밤 꿈에 영감이 보이더구만요. 나도 이제 떠날 때가 되었나 봅니다. 이제 우리 영감 곁으로 가야겠습니다. 이 세상 마실 왔다가 좋은 영감 만나 나도 잘 놀았지요. 저작권자 © 시니어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방종현 기자 bjh1176@hanmail.net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