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⑨아아 빛나여라 북부국민학교(1)
[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⑨아아 빛나여라 북부국민학교(1)
  • 정재용 기자
  • 승인 2019.08.12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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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개교, 1951년 3월 제1회 졸업생 배출
1961학년도부터 3월 1일 개학
소풍은 흥덕왕릉이 단골

일제강점기의 소평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2km 정도 떨어진 읍내의 안강제일국민학교에 다녔다. 당시 안강 지역의 유일한 국민학교(초등학교)였기 때문이다. 해방되면서 마을 인근에도 학교가 생겨났다. ‘안강북부국민학교였다. 우리는 안강은 생략하고 그냥 북부국민학교라고 부르거나 아예 줄여서 북부학교라고 불렀다. 북부학교는 해방되던 1945년에 개교해서 1950학년도 말(1951.3.)에 제1회 졸업생 29명(남자 18, 여자 11)을 배출했다. 당시는 41일에 학년도를 시작하여 이듬해 3월에 진급하거나 졸업하던 제도였다. 오늘날처럼 31일 시작 이듬해 2월 마치는 것으로 바뀐 것은 1961학년도부터다.

학교 위치는 경북 월성군 안강읍 육통리 543-3번지였다. 개정된 주소지로는 경북 경주시 안현로 1853-12이다. 학교는 황새마을(학지, 鶴旨)에서 어래산이 있는 북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도로변에 있었다. 황새마을로 봐서는 도로 건너편이었다.

교사(校舍)는 옆으로 길쭉한 남향 기와집이었다. 빗물받이 양철 파이프가 지붕에서 처마 밑 자갈 위로 내려오고 있었고 자갈길은 화단의 경계가 됐다. 화단의 폭은 1.5m 가량이었으며 그 앞쪽은 운동장이었다.

운동회 날 마칭밴드가 지나는 본부석 뒤로 초창기에 지은 교사가 보인다. 제25회(1975년 2월 졸업) 사진첩에서 캡처. 정재용 기자
운동회 날 마칭밴드가 지나는 본부석 뒤로 초창기에 지은 교사가 보인다. 제25회(1975년 2월 졸업) 사진첩에서 캡처. 정재용 기자

교실 1칸은 20평과 복도 5평이었는데 한 지붕 밑인 만큼 역시 다른 학반과 옆으로 쭉 연이어져 있었다. 운동장에서 보면 지붕 바로 밑에는 직사각형 고정 유리창이 박혀 있고 그 아래는 커다란 창틀이 짜여 있었다. 창틀 안에는 유리창 8개 들이 창문 2개가 끼워져 있어 서로 밀어서 열거나 닫게 돼 있었다. 하교할 때는 창문을 닫고 창문이 겹치는 부분의 구멍에 쇠를 꽂아 넣고 돌려서 잠갔다. 이 쇠를 우리는 사시고미(さしこみ)라는 일본어 그대로 불렀다.

창문은 하나가 8개의 졸대로 나눠 있고 졸대 안에 각각 작은 유리창이 끼여 있었다. 창문 밑에는 가느다란 레일 위로 굴러다닐 수 있게 작은 도르래가 양쪽에 박혀 있었다. 유리창 청소당번이 되면 보통 창문 하나씩이 배정됐다. 유리창은 운동장 쪽, 복도 쪽, 복도의 바깥쪽에 있었다. 겨울철이면 따스한 햇볕이 드는 운동장 쪽이 좋았다.

창문틀 아래로는 검은 콜타르가 칠해진 나무판자를 횡으로 층계가 되게 붙인 벽 4줄이 있었고 그 아래는 시멘트였다. 교실의 중간쯤에 시멘트 약간을 틔어 교실 마룻바닥 아래 공간이 통풍이 되게 했다. 옹이가 빠져서 생긴 구멍으로 연필이나 지우개를 떨어뜨리면 아이들은 시멘트 구멍으로 기어들어가서 찾아오기도 했다.

15회 졸업생인 우리는 남자 56명 여자 48명이 졸업했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남자반인 1반 권용국 선생님, 여자반인 2반 박진태 선생님이었다. 6학년 때는 운동장 서쪽에 새로 들어 선 콘크리트 교실에서 공부를 했다. 교실 뒤쪽으로는 자연학습지와 울타리 가까이에 연못 하나가 있었다. 당시는 중학교 갈 때도 입학시험을 치던 때여서 우리는 햇빛이 서쪽에서 들어와 책상을 비출 때까지 공부를 했다.

5학년 때 담임은 박곤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글씨는 분필로 쓰나 펜으로 쓰나 언제나 반듯했다. 선생님은 훗날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고 영남공고 교장으로 퇴직했다. 4학년 때 담임은 손일규 선생님, 3학년 때는 손성익 선생님이었다. 3학년 때부터 선생님들은 5.16혁명(군사정변)과 더불어 생긴 흑갈색 골덴(cording) 양복의 재건복을 입었다. 손일규 선생님은 재건복 상의 포켓에 엄지손가락만 밖으로 나오게 두 손을 찔러 넣고 다녔다.

교문은 동쪽으로 나 있었다. 교문을 나서면 바로 신작로였다. 유명한 6.25안강기계전투의 안강, 기계, 죽장, 도평을 잇는 작전도로였다. 교문 가까이 우물이 있었고 우물 옆에는 커다란 향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학교의 동편 울타리는 키 큰 측백나무 숲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신작로의 먼지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졸업 후에 가보니 교통사고 위험 때문에 교문이 남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전제조례 광경.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서관, 서관 뒤로 보이는 산이 어래산이다. 제25회(1975년 2월 졸업) 사진첩에서 캡처. 정재용 기자.
전제조례 광경.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서관, 서관 뒤로 보이는 산이 어래산이다. 제25회(1975년 2월 졸업) 사진첩에서 캡처. 정재용 기자.

 

본관 뒤 동편 측백나무 울타리 쪽에는 실습지가 있었다. 실과시간이면 우리는 곡괭이나 삽을 들고 나가서 흙을 파서 뒤집거나 잡초를 뽑았는데, 한번은 흙을 깊이 파다보니 토기가 여러 점 나왔다. 경주박물관에 보낼 거라더니 정말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박물관에 가면 그때 생각이 나서 출토지역을 유심히 살펴본다.

본관 뒤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작은 산이 있었는데 이름은 남산이었다. “, 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의 남산이 그 남산인 줄 알았다. 학교 뒤 북쪽의 높은 산이 어래산이었다. 사방공사를 위한 억새풀 씨를 받거나 월동준비로 난로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서 늦가을이면 어래산으로 갔다. 어릴 적에는 어래산 너머는 빨갱이가 사는 곳인 줄 알았다.

해마다 추석 즈음하여 가을 운동회가 열렸다. 본관 태극기 봉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남쪽 플라타너스 나무에 만국기가 걸리고 고학년 남학생은 텀블링과 기마전을 맡았다. 학부모를 위한 순서도 간간히 있었는데 그 중에 삼부자달리기도 있었다. 자녀 둘과 부모 중 한 사람이 나가서 이어달리는 경기였는데 자녀를 많이 낳던 시절이라 여러 가정이 나갔다.

소풍은 저학년 때는 봄, 가을 할 것 없이 흥덕왕릉이었다. 신라 42대 흥덕왕(재위 826~836)의 무덤으로 육통마을을 가까이 있어 가기 좋았다. 왕릉의 밑 둘레를 따라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한 돌판이 박혀 있고, 무덤 네 모서리에 돌사자 한 마리씩 그리고 전방으로 문인석 무인석 이 각 한 쌍씩 배치 돼 있다. 해상왕(海上王) 장보고 장군이 바로 흥덕왕 때 사람이다. 6학년 가을에는 옥산서원이었다. 옥산서원은 편도 8km 남짓으로 산을 몇 개나 넘어야했다.

소평마을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마을 뒷길에서 로 거의 똑바로 이어지는 외길이었다. 길 오른쪽으로는 수로가 나 있었고 중간 중간에 시멘트로 만든 보가 있었다. 비가 오면 물소리 따라 걷고 겨울이면 군데군데 있는 얼음을 지치면서 갔다. 그 물은 마을 뒤를 돌아 큰거랑으로 흘러들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월사금(月謝金) 외에 불우이웃돕기, 장병 위문품 보내기를 위한 성금 독촉이 있었고 폐품수집, 도서 장만을 위한 이삭줍기 등 물품 제출 요구도 많았는데, 이를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은 등교 도중에 눌러 앉아 놀다가 하교 무렵 시치미를 떼고 집으로 갔다. 이것을 중간학교라고 했다. 겨울에는 보 안에서 나무 말뚝을 모아 불을 피우며 놀았다.

교기 아래 왼쪽부터 서관, 교문, 본관 모습이다. 교문 위에 ‘반공으로 굳게 뭉쳐 유신과업 완수하자’, 서관에는 ‘○○○강화하여 나라를 빛내는 국민을 기른다‘라는 글이 보인다. 제25회(1975년 2월 졸업) 사진첩에서 캡처. 정재용 기자
교기 아래 왼쪽부터 서관, 교문, 본관 모습이다. 교문 위에 ‘반공으로 굳게 뭉쳐 유신과업 완수하자’, 서관에는 ‘○○○강화하여 나라를 빛내는 국민을 기른다‘라는 글이 보인다. 제25회(1975년 2월 졸업) 사진첩에서 캡처. 정재용 기자

6학년 때 교가가 생겼다. 나라에서 교가 없는 학교에 교가 지어주기 운동을 펼친 덕분이었다. 학교에서 북서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어래산이 높이 솟아 있어 교가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김용진 작곡이었다.  

어래산 정기 내려 넓은 들 이루니/ 산 좋고 물 좋을 세 기름진 땅 우리 안강/ 이 곳에 자리 잡고 억만 년 빛나오리/ 아아 위대하다 문화의 집 배움의 터/ 아아 빛나여라 북부국민학교

훗날 동생이 졸업사진첩을 보니 교가가 바뀌어 있었다.

어래산 정기 내려 넓은 들 일우니/ 산 좋고 물 좋을 세 기름진 땅 우리 안강/ 이 곳에 자리 잡아 억만 년 빛나오리/ 아아 문화의 집 북부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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