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토착왜구'라는 말
(26) '토착왜구'라는 말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8.1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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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政黨)은 ‘일정한 정치 이상의 실현을 위해 정치권력의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 단체’라고 사전에 풀이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정당은 권력 쟁취를 위해서 결성된 무리(黨)이다. 정치 무리의 특성상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는 한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물리치면서(黨同伐異),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한다. 이런 속성은 ‘당(黨)’이라는 글자에 이미 새겨져 있었다.

『설문해자』를 보면, ‘무리 당(黨)’은 ‘불선야(不鮮也)’ 라고 풀이 되어있다. ‘불선(不鮮)’은 ‘곱지 않다’ 또는 ‘좋지 않다’라는 뜻이다. 그 까닭은 ‘당(黨) 자(字)’의 부수인 ‘검을 흑(黑)’에 있다. ‘흑(黑)’자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치솟아 오르는 ‘검은 연기’라는 뜻이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혹은 실수로 재산이 소실될 때 마을에 화염과 검은 연기가 솟아오른다. 결과적으로 ‘검을 흑’은 행운이 아니라, 좋지 않는 일(不鮮)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당쟁이라는 좋지 않을 일의 주된 무기는 말이다. 2019년 3월 14일 야당 원내대표가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들이 분열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다음 날 여당 대변인이 “나경원이 토착왜구 라고 스스로를 밝혔으니 반민특위에 회부하라”라고 공격했다. 이 말에 야당의 대변인이 15일 “친일 매도 비판과 단어 선택이 도를 넘었다.”며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가 반드시 이어질 것”이라고 반격했다. 이에 대해 다른 야당 대표가 “토착왜구가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을 휘젓고 있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논쟁에 가세했다. 이러한 정당 간의 정쟁이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불화살을 당기는 싸움이다.

토착왜구, 즉 토왜(土倭)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1908년 4월 5일자 「대한매일신보」 국문판과 국한문 혼용판에 ‘청결방침(淸潔方針)’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 내용은 일진회(一進會) 친일파를 일본 앞잡이, 토왜(土倭)라고 비난하는 것이었다. 2년 후, 1910년 대한매일신보의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에서,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이라고 풀이했다.

100년에 논란이 되었던 ‘토착왜구’라는 단어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등장한 까닭은 무엇인가? 미묘한 배경이 숨어있기도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말을 당쟁의 강력한 무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토착왜구’라는 공격 무기의 적절성에 있다.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 대포를 쏘지 않아야 하고, 성벽을 부수기 위해서 소총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다.

먼저 ‘토착왜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혀보아야 한다. 토착(土着)은 ‘대대로 그 땅에서 살고 있음.’ 그리고 ‘생물이 어떤 곳에 침입하여 거기에 머무르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토착왜구’는 일본에서 건너와서 약탈, 살인, 방화를 일삼는 강도들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대로 살면서 또는 오래 전에 건너와서 살면서 왜구와 같은 짓을 하는 도둑놈들 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런 행동을 하는 국회의원은 없다.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해서 강력한 무기라고 선택한 ‘토착왜구’라는 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어(死語)된 용어이다. 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을 성급하게 사용하는 과도한 전략의 결과이다. 이는 아무리 선전선동에 맹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더라도, ‘토착왜구’라는 낡은 말에 쉽게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이 역사를 왜곡할 때 우리는 크게 분노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무언가 왜곡하고 있는 것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올바른 역사 인식이 있어야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 증폭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바로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홍차에 소금을 듬뿍 넣어서 마실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