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엄마 걱정'
기형도의 '엄마 걱정'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8.10 16:32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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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20 세종마트
2019-08-01 세종마트

 

기형도의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91.02.01.

 

모처럼 열무김치를 담갔다. 전에 살던 동네 마트에 갔는데 열무 두 단 값이 단돈 천 원이었다. 때마침 반짝 세일 타이밍을 잡은 것이다. 열무는 너무 세게 문질러 씻으면 풋내가 나서 안 좋다. 아기 목욕시키듯이 살살 다루어야한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굵은소금을 뿌려놓고 밀가루 풀을 끓였다. 찬밥이 있을 땐 밥을 갈아서 넣기도 한다. 붉은 색 파프리카 한 개와 양파 한 개를 곱게 썰어서 파, 마늘을 섞어 양념을 만들었다. 절인 열무에다 준비한 양념을 버무린 후 식힌 풀물을 부었다. 마른 홍고추 두 개를 가위로 잘게 오려 고명으로 얹었다. 제법 그럴싸한 겉보기에 간도 적당하다. 한나절 상온에 두었다가 냉장고에 넣으면 끝이다.

실수투성이였던 신혼시절이 생각난다. 요즘처럼 컴퓨터만 열만 요리법이 있던 시절이 아니다. 김치 담그려고 시장에서 통마늘을 사와 껍질을 벗겼다. 몇 톨이나 깠을까. 왼손가락 엄지와 검지 지문 부분의 살갗이 쓰려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책 없이 혼자 징징 울다가 집주인 아줌마한테 찾아갔다. 조각얼음을 내어주며 마늘 독기를 빼라고 했다. 얼음물에 담가도 생각만큼 쉽사리 매운 기운이 빠지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온 동네에 마늘 까다가 운 새댁이라는 소문이 마늘 독보다 더 심한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때 생긴 마늘에 대한 트라우마라 할까. 무조건 까놓은 마늘을 사서 먹는데 어쩌다 통마늘이 생기면 남편한테 떠맡긴다.

이 시는 빈 방에 홀로 남아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주제다. ‘해는 시든지 오래’, 해를 생물로 본 상상력이 돋보이고 ‘찬밥처럼 방에 담겨’, 자신을 찬밥에다 비유한 수사법이 아릿하다. ‘배춧잎 같은 발소리’, 감각적인 심상이 읽는 맛을 더한다. 어머니의 고된 일상과 아이의 애틋한 그리움을 애상적 독백형식으로 그려낸다.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안 오던 시인의 엄마는 열무만 팔면 돌아올 수 있으니 희망적이다. 저세상으로 떠난 엄마를 기다리던 내 어린 날의 기다림은 속수무책 그 자체였다.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공감이랄까. 내가 화자인 양 시의 행간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