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옥산서원②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옥산서원②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08.05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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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여 앉은 여인은 다름 아닌 경란이었다.
눈은 생명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능력이 있다.
지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들은 찾을 수도 있으련만...!
여름 옥산서원. 이원선 기자
여름 옥산서원. 이원선 기자

빈 대()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조지훈의 승무중 일부)

삭풍이 문풍지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방 안에서 차갑고 등잔불은 기름이 다해 깜박거리는 옆으로 삼단머리채를 틀어 올려 나비잠을 꽂아 뽀얗게 들어난 목덜미가 가냘픈 듯 서러워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여 앉은 여인은 다름 아닌 경란이었다.

그대가 어찌 여길 있소?” 묻는데 수줍은 듯 고개를 반대로 돌려 냉수 대접만 살며시 내밀 적에 삼회장저고리의 소매를 벗어난 팔목 아래의 뽀얀 손이 앙증맞아 예쁘다.

춥지 않소?” 묻는 말에 그녀는 오늘 밤에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이 오는 날인지라 일찌감치 끊어진 손님에 뒤늦게 찾아든 손님이란 것이 나물 한 접시에 박주 한 병을 시킨 뒤 얼마나 치근대는지 몸살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장사려니 하는 생각에 술꾼의 수작을 요리조리 뭉그적거려 시간을 보내는데 불식간 윤수사가 찾아들어 적설한풍(積雪寒風)속에 이곳으로 끌려왔단다.

이유 따위는 묻지를 않아 대답할 필요가 없었단다. 그저 뛰다시피 업히다시피 보쌈을 당하듯 따라나섰단다. 사실 이때만 해도 기생들의 권위와 인권 따위는 양반들의 노리갯감 정도에 불과했다. 반항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 또한 윤수사가 품은 의도를 평소답지 않게 서두르는 행동으로 미루어 은연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어 잡은 손을 놓칠까 염려스러워 맞잡은 손에다 더욱 힘을 가하는 그녀였기에 불감청이면 고소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순순히 끌려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나리 어째 이카세요! 이유나 좀 듣고 숨이나 돌리고 갑시다하고 앙탈을 부린 뜻은 여인네의 좁은 소견으로 은근하게 주가를 올려보려는 수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콧등도 양 볼도 빨갛게 달아올라 늦가을 날의 홍시를 보는 듯하다. 철석간장(鐵石肝腸)인들 어째 무정타 하리오! 술상머리의 지난날들이 남의 일인 듯 스러져 날이 차갑소!” 이불을 들친다.

세상에는 참 많은 소리들이 있다. 그 많은 소리들 중 남자들이 듣기 좋은 소리 중의 하나가 화촉동방(華燭洞房)에 든 내 여인의 옷고름 푸는 소리란다.

숲을 통해 본 옥산서원. 이원선 기자
숲을 통해 본 옥산서원. 이원선 기자

초가지붕위로 소복이 눈이 내린다. 눈은 생명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능력이 있다. 겨울이 마냥 춥기만 하다면 봄이 되어도 새 생명의 싹이 트질 못할 것이다. 그런 불행을 위해서 눈이 내리는 모양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눈이다. 나뭇가지 위에서 소르르 흩어지는 눈들이 대지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비단옷자락이 사각 사르르스치는 소리 같고 비단금침이 눈밭 위로 펼쳐지는 소리 같다.

누군가에게는 춥고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겨울이 지나 봄이 돌아왔다. 그동안 조정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간 조정의 핵심세력으로 권력을 농단하던 김안로가 적신(賊臣)의 나락으로 떨어져 귀양길에 올랐다가 사약을 받은 것이다. 이에 중종(中宗)임금은 급히 회재를 부른 것이다. 마음이 바쁘다보니 어머니만 달랑 모시고 떠나는 회재다. 윤손을 비롯한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경란을 소실로 데려가길 원하였지만 다사다난한 조정대사에 사사로운 정은 있을 수 없다며 홀연히 떠난 그였다.

높은 언덕에 올라 옷고름을 접어 눈물을 훔치는 여인의 마음은 그리움에 사무친다. 만물이 소생하여 연두색으로 물들어가는 봄이 야속하고 임의 뒷모습을 가려 하늘거리는 버들가지가 야속하다.

어디선가 봄 아지랑이를 넘어 유리왕이 치희를 잃은 슬픔에 젖은 황조가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듯하다.“편편황조, 자웅상의, 염아지독, 수기여귀(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가 살꼬?”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에서 쌓은 하룻밤의 사랑이 영영 떠나는 것이다. 이 그리움과 외로움을 어찌 감당할꼬? 임을 잃은 슬픔을 못 견딜까 두려워 칼을 물고 자결이라도 할까 싶지만 그마져도 천륜에 어긋나 그저 샘솟는 눈물을 부여안아 꺼이꺼이 우는 것이다. 둘러보니 모두가 짝이 있어 즐거운 봄이건만 홀로 남겨진 이 내 몸만 서러운지라 봄을 맞아 새로이 둥지를 짓고자 정답게 지저귀는 까치조차 원수 같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임의 뒷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볼까 싶어 까치발로 몸을 키우고 목을 길게 빼지만 길은 또 왜 그렇게 굽었으며 말발굽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빠른지 산을 깎고 말 다리를 자당실로 칭칭 동여매고 싶다.

약사몽혼행유적(若使夢魂行有跡: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전석로반성사(門前石路半成沙: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이옥봉의 몽혼 중 일부

이후 중천을 넘은 태양이 엽전으로 변해 이내 속으로 떨어져 황혼이 내릴 때까지 수릿재에 올라서서 동해를 바라보던 박재상의 부인처럼 시선은 줄창 임이 사라진 길을 향해있다.

여름 볕이 아름다운 옥산서원. 이원선 기자
여름 볕이 아름다운 옥산서원. 이원선 기자

조정으로 돌아온 회재는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승차된 후 명종(明宗)원년에 영의정(領議政)의 지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조정의 풍파는 늘 사납고도 모질어 문정왕후와 윤원형이 일으킨 을사사화(乙巳士禍:1545)의 여파로 인해 삭탈관직(削奪官職)되어 귀양길에 오른다. 그때 그의 나이 55세로 경주에서 한양으로 온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해발 2000m, 압록강을 끼고 있는 강계(江界)땅의 귀양살이는 모질고도 힘들었다. 위리안치(圍籬安置: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둠.)가 필요치 않을 만큼 고립무원이다. 어디를 가고자 해도 보이는 것은 울울창창(鬱鬱蒼蒼:큰 나무들이 아주 빽빽하고 푸르게 우거져 있다)이며 산 넘어 또 산이라 노구를 이끌어 길을 나서기에는 사계절을 헤아릴 곳이 아니다.

시나브로 3년이란 세월이 흐른 요즈음 노재상이 뼈에 사무치게 후회되는 것은 있어 살아 생전 일점 혈육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발그레하게 홍조 띈 얼굴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품지 못한 것이 한으로 젖어든다. 그 눈물은 미소로 바꾸어 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외롭지만은 않았을 것을! 늙어갈수록 쓰잘머리 없이 웬 눈물은 그리도 많은지 아기울음소리만 들어도 수염자락이 젖고 뭇 아이들이 무심코 내지르는 아버지란 소리에도 베갯잇이 축축한 밤이다. 외로운 나날들이 겹치다보니 더욱 지쳐가는 귀양살이다. 그 지난한 세월이 무려 3년째다.

주름은 거미줄처럼 얼굴을 덮어 깊어가고 칠흑의 머리는 그새 서리가 내려 하얗다. 고독과 외로움이 뼈에 사무쳐 젓을 담을 지경이다. 그러보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귀양살이가 인귀상반(人鬼相半:사람과 귀신이 반반이다.)이나 다를 바 없다. 죄인의 거처를 누가 찾을까마는 미상불 지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들은 찾을 수도 있으련만...!

그런 노재상을 찾는 손님이 있단다. 의아한 생각에 맞아한 손님은 뜻밖에도 젊은 소년이다. 그는 대뜸아버지라고 부른 후 덥석 절부터 올린다. 당황한 노재상이 불식간 반절을 하며 나는 자식이 없는데!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그대는 뉘신가?”묻자 소년은 품안에서 편지 한통을 꺼내 양손으로 받들어 공손하게 건넨다. 이어 편지를 펼쳐든 노재상의 손이 가늘게 떨고 감은 듯 내린 양 눈이 파르르하더니 불식간 양 볼을 타는 눈물이 처연하다.

그리고 그때 노재상의 눈에 든 편지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이제 이 어미가 부르고 자부가 글을 써서 너의 아들 편에 보내니 부자상봉 하라! 당초 내가 경주를 떠난 뒤 그 여인은 너의 친구인 윤수사의 소실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5개월 만에 이 애를 낳았다. 이를 미루어 짐작컨대 이 아이는 너의 핏줄이 분명하며 얼마 전 그의 어미가 구구절절 편지에 밝혀 보내왔다. 이후 이 아이의 행동거지가 네 어릴 적을 어찌나 닮았는지...! 뒤돌아보는 모습, 밥을 먹는 모습, 뛰어가는 모습, 걸음걸이와 심지어 코를 훌쩍이는 모습조차 흡사 너를 보는 듯하다. 이에 너는 의심치 말고 옆에 두고 지내도록 하라!” 하고 끝을 맺은 말미에 이 아이의 이름은 그 어미가 지었으며옥랑이라 적혀 있었다.

편지를 다 읽은 노재상이 젊은이를 품에 안아 내 아들 옥랑아~’회한의 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