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19)
녹슨 철모 (19)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08.0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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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중위가 2대대의 임진강 숙영지에 도착하니 야산에 군용 천막이 빼곡하게 쳐져 있었다. 그러나 병력은 경계병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숙영지에서 2km쯤 떨어져 있는 임진강 작업장에 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의무대에 가 보니 숙영 시작은 일 주일이나 되었지만 지휘자인 군의관이 없었으니 천막이나 위생 도구 뭐 하나 제대로 챙겨져 있는 것이 없었다. 식수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임진강을 경계로 민통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들의 숙영지는 임진강 건너기 전이라 민통선 가기 전이다. 숙영지인 야산 아래 민가 몇 채가 있었다.

사병들이 그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오는데, 텃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우물까지의 거리도 멀었다. 소문에는 이 동네 사람들의 친척이 대부분 휴전선 바로 위에 살고 있어 이 동네 사람들이 우리 편인지 저쪽 편이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여느 시골 같으면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일부러라도 우물물을 나눠줄 텐데 이곳 주민들은 표정 하나 없이 항상 냉랭하였다. 물 길러 가면 괄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태원의 생각에 이 사람들은 수시로 남북을 오가는 첩자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런 푸대접이 싫어 보병들은 공사를 마치고 숙영지로 돌아올 때 아예 임진강 ‘틸’ 교를 건너가 물을 길어서 각자의 텐트로 들고 오니 동네 주민들과의 마찰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의무대는 병력도 모자라고 그럴 기구도 없었다.

우 중위가 숙영지의 지형지물을 자세히 살펴보니 소 잔등 같은 얕은 능선을 따라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위생병들을 동원해 그 물줄기를 더 깊게 파고 자갈을 깐 뒤 흙으로 다 파묻었다. 그렇게 다 묻은 끝 쪽에 구덩이를 파고 다시 깨끗한 자갈로 채우고 한쪽에 물 받는 입구를 만들었다. 이 구덩이가 필터가 되어 도랑물이 식용 가능한 샘물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석 달 이상을 거기에 머물며 그 물을 먹었는데도 아무런 탈이 없었다.

육군 규정집에 보면 작전이나 장기 공사로 병력이 부대를 오랫동안 떠날 때는 환자를 자대에 남겨두지 않게 되어 있다. 전부 작전에 참가시키거나 아니면 후방으로 이송해야 한다. 하지만 이 규정은 전시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현실적이지 못했다. 가령 감기나 간단한 외상을 입었을 때 중병도 아닌데 이들을 전부 연대 의무중대나 사단 의무중대로 후송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감기 걸렸다고 연대에 후송을 보내면 받아줄 군의관도 없을 뿐더러 보낼 군의관도 없다. 그러나 규정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우 중위는 군대 생활이 무언지 잘 모르는 신임 장교에 지나지 않아 자신이 이런 모순을 해결하겠다고 겁 없이 일을 벌였다. 즉 아픈 사병들을 후송 보내기보다 자대에서 치료하겠다고 각 중대에 연락하여 A텐트(사병 개인용 천막)를 모았다. 이 A텐트는 보병 한 사람이 한 장씩 보유하고 있다가 야외 작전을 나가면 두 사람이 한 장씩 붙여서 2인용 텐트를 만드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환자들을 입실시키기 위해 그들의 텐트를 수집해온 것이었다. 각 중대장들도 협조를 잘 해주었다. 그들도 자신의 중대에 환자의 후송이 많으면 대대장에게 혼도 나고 자연 그들의 고과 점수도 나빠지므로 협조를 잘 할 수밖에 없었다. 우 중위는 내친 김에 자신의 텐트도 아예 환자용 텐트로 기증해 버렸다. 그러고 나니 자신은 잘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동네 허술한 민가의 방 하나를 세 내었다.

세상은 그의 뜻을 선의로 이해해 주지 않았다. 세상사는 동기가 좋더라도 그 과정이 잘못되면 그 일은 오히려 크게 치도곤을 당하게 마련이다. 이번 경우 역시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매일 밤 대대 참모회의가 열리는데 그날의 작업에 대한 진도와 또 내일의 작업에 대비한 계획들을 토론하고 지시받는 일이 주 내용이었다. 우 중위도 참모라 매일 참석은 하지만 대개 자리만 채우고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회의는 주로 작업 진도가 느린 중대장들이 혼이 나고 기타 참모들이 꾸중 듣는 것이 매일 회의의 일과처럼 되어 있었다.

한 번은 회의 중에 느닷없이 대대장이 장교들의 군화 신은 발을 전부 책상에 올려 보라고 했다. 그 당시 육군 규정상 장교들은 검은 양말을 신게 되어 있었고, 군화의 끈도 맨 앞줄은 두 개를 나란히 묶은 다음 나머지 줄들은 바깥 줄들이 안쪽 줄들을 타고 넘어가게 매도록 되어 있었다. 10여 명이 넘는 중대장과 참모 중에서 규정대로 군화를 신고 있었던 사람은 금년 육사를 갓 졸업해온 인사장교 문 소위와 군의관 우 중위 단 둘밖에 없었다. 대대장은 오는 날부터도 이상하리만치 우 중위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는데 이날 회의 이후에는 어떤 경우에도 군의관에 대해서는 깍듯하게 예를 갖춰 대하였다. 보통 부를 때도 우 중위라거나 혹은 군의관 누구라기보다는 닥터 우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렇게 존중받던 우 중위가 어느 날 회의에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나는 이제껏 우 중위를 잘못 봤어! 어떻게 우 중위가 그럴 수가 있나?" 

대대장이 평소 장교들을 꾸중할 때와 다른 어조로 그를 나무라니 회의 분위기는 더없이 무겁고 어색하였다. 우 중위는 자신이 뭔가 잘못하여 꾸중을 듣기는 하나 본데 그것이 뭔지 몰라 이 얼굴 저 얼굴을 둘러보았다.

"군의관 당신도 한 번 생각해봐! 대대장 이하 우리 부대 600명이 하나 같이 텐트를 치고 고생스레 숙영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그런데 당신은 혼자 동네에 방을 구해서 따로 살고 있다며?“

대대장은 우 중위를 빤히 쳐다보면서 확인 겸 꾸중 겸 물었다. 그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장교 초년병인 우 중위는 그래도 자신의 죄를 모르고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한마디하였다.

“작전을 나오니까 사단에서 전통이 오기를 모든 병력은 작업장에 투입하고 환자가 있으면 즉시 후송하라고 하더군요. 그 지시대로라면 작업 중 자그마한 상처를 입어도 후송해야 되고 감기라도 좀 심하면 후송해야 됩니다. 그러나 연대나 사단 의무중대에서는 절대로 그런 환자는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감기 걸린 사병이나 손발이 찢어진 사병들을 작업장으로 내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이야기를 중간에 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두들 잘 듣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단의 지시를 어기고 야전의무대에 입실을 위한 텐트를 만든 것입니다. 각 중대에서 잘 도와주지를 않아서...” 

라고 말을 하자 부대대장이 말을 고쳐주었다.

“잘 협조를 해주지 않아."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잘 협조를 해주지 않아 저는 위생병들 것과 저의 것 모두를 환자 입실용 텐트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안대에서 군의관이 혼자 편안하게 지내려고 민가에 숙식하고 있다고 첩보를 올린 모양이었다. 대대장도 경위를 따로 조사를 해보지 않고 화를 내었다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듣고 사태에 대한 이해가 된 것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따뜻해졌다.

“듣고 보니 그건 그러네. 지금이 전시도 아닌데 어떻게 다 후송처리를 하나? 야! 보급관 빨리 군의관용 텐트 A급을 하나 지급해줘. 그리고 우 중 위는 빨리 짐 싸서 숙영지로 돌아와.” 

이렇게 일은 쉽게 무마되었다. 이렇게 하여 우 중위도 남들과 똑같은 텐트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태원에게는 베개가 없었다. 임진강변의 숙영 생활은 석 달 이상 계속되었지만 우 중위는 만날 내과 교과서를 베고 잤던 것이다.

그렇게 지겹고 힘들던 숙영생활이 끝난 뒤 이병주가 베개를 사서 왔다. 태원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왜 정작 필요할 때는 사오지 않던 배게를 이제야 사온 것일까? 베개를 선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쉽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