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강아지, 우리 강아지
(24) 강아지, 우리 강아지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7.29 0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우리 사회의 향기로운 꽃이 되기도 하고, 상처를 주는 가시덩굴이 되기도 한다.

 

pixabay
pixabay

 

말은 생성, 변화, 소멸을 거듭한다. 말은 사용에 의해서 생성되고, 사용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나고,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그래서 ‘말은 사용이다’라고 한다. 30∼40년 전 만해도 ‘소와 송아지’, ‘말과 망아지’처럼 ‘개와 강아지’의 구별이 명확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새끼도 ‘강아지’ 어미도 ‘강아지’ 라고 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변화의 배경이 궁금하다.

지난 수년 동안, 애견 인구가 상당히 증가 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유명 견공들이 많이 수입되었다. 여러 가지 혈통을 이름은 물론이고, 신체적인 특징과 모습을 자랑하는  녀석들이 속속 들어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수입된 견공들은 몸집이 크고 위협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실내에서 키우는 작고 귀여운 종류가 많아졌다. 다 커도 전통적인 우리나라 누렁이에 비하면 새끼 정도인 녀석들이고 보니, ‘그 강아지 이쁘다’ 라고 말하게 되었을 것이다. ‘강아지’라고 하면, 그 연상(聯想) 의미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외출할 때 예쁜 옷으로 치장한 반려견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실내에서 키우는 몸집이 작은 개가 많아지면서 ‘강아지’ 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었다는 것이 변화의 배경이었다.

이 변화를 감싸주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할머니들의 애정 어린 목소리였다. 자손이 귀한 집안일수록, 할머니들이 어린 손자를 품에 안으며 '아이고! 우리 강아지' 라고 하곤 했다. 왜 할머니들이 손자에게 ‘강아지’라는 은유법을 사용해 왔을까? 1940년대 중 후반에는 속수무책의 홍역이 전국의 온 마을을 휩쓸며 어린 아이들을 빼앗아 갔고, 한국전쟁 후 1950년 중반에는 뇌염이 유행하면서 많은 어린 생명을 땅에 묻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귀하게 키우다 보면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속설(俗說)이 작용하면서 본명을 잘 지어놓고도 천한 이름으로 '개똥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할머니에게 손자, 개똥이는 그야말로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강아지였다. 할머니는 똥 싼 녀석의 귀저기를 갈고 나서 다시 품어 안으며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하며 볼에 입을 맞추었다. 똥을 싸면 어떠랴! 무럭무럭 자라기만 해다오! 귀한 ‘내 새끼’라고 했다. 이리저리 감싸 안으며 '강아지, 우리 똥강아지!'를 연발하던 할머니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오늘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마음속에도 할머니의 그 애정 어린 목소리가 아련하게 전해 왔을 것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는 이러한 모방 현상을 밈(Meme)이라고 했다. 밈은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개인적인 생각과 신념이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밈은 생물학적인 유전자와 동일하게 변이, 경쟁, 자연선택, 유전의 과정을 거쳐 수직적으로, 혹은 수평적으로 전달되면서 진화하는 사회·문화적인 유전인자이다. 도킨스의 연구를 이어가는 수전 블랙모어(Susan Blackmore, 1951∼ )는 옷이나 식습관의 유행, 예식, 관습, 기술 등도 모두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복사되는 현상을 밈으로 보고 있다. 밈은 사람들의 뇌에 혹은 책이나 발명품에 저장되면서 모방을 통해서 전달된다고 했다. 그리고 신이나 내세에 대한 믿음인 종교도 전 사회에 전파되는 ‘생존력이 아주 높은 밈 집단’ 이라고 풀이했다.

이웃집 누군가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큰 개를 '강아지'라고 하면, 처음에는 ‘어, 왜 그러지?’ 하며 멈칫하다가, 그 다음에 다시 들으면서 ‘나도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 슬그머니 인정하게 하고 만다. 이런 모방 현상이 ‘밈’이다.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던 작던 견공들에게 모두 ‘강아지’라고 하는 것은 ‘밈’의 결과이다. 단어의 의미상으로 보면, 어쩔 수 없는 모순이지만, 이렇게도 저렇게 사용되는 언어의 특징 중에 하나인 임의성이다.

밈 현상의 주된 에너지는 언어이다. 인류가 말을 사용하면서 문화가 발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SNS 시대의 밈은 한층 더 빠르고 광범위해 지며 영향력도 증대하고 있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우리 사회의 향기로운 꽃이 되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덩굴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는 우리 조국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