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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12:3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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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영천에서는 오늘을 작은 추석이라 불렀다. 아울러 설 전날은 작은 설날이라 불렀다.</p> <p>출가외인인 누님을 뺀 3형제가 또 간만에 만나 약간 늦은 시각 한잔의 낮술로 회포를 풀고 지금은 잠시 휴식 중.</p> <p>이듬 해의 키와 체격과 발의 성장치를 정확히 예단하시는 엄마의 눈에 꼭 맞는 새옷으로 성장을 하고, 검정고무신이나 운동화 역시 내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쬐끔 넉넉한 새신으로 갈아 신고 도토리가 우두둑 떨어져 있는 그리 머쟎은 동구를 지나 이슬 밟으며 도착한 큰댁.</p> <p>차례 후 평소엔 잘접하지 못하는 산해진미로 아침을 먹고, 송편 두어 개와 오징어 포 몇 가닥을 우물거리며 화약총 놀이ㆍ구슬ㆍ딱지치기로 동네마당에서 진종일을 놀곤, 저녁의 앞산에 떠 오르는 달은 언제나 정말 큰쟁반 같이 샛노ㅡ란 둥근달 이었다.</p> <p>그 때 그날의 아버지 엄마가 오늘도 지금도 곁에...!!!</p> <p>첫 아이 땐 목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둘째 아이의 출산 즈음 해서는 휘경동 위생병원 근처의 감나무가 있던 마당깊은 집에서 전세를 살았다.</p> <p>녀석을 양력 8월 중순에 출산했던 관계로 그해 추석엔 고향엘 가지 못했다. 2층엔 주인아주머니가, 1층엔 우리 말고 한집이 더 살았다. </p> <p>내 나이 서른 넷 이던 그해 작은추석날 여지없이 쟁반 같은 샛노란 둥근 달이 떠 있을 때, 옆집은 고향(아마 광주였었지?)으로 내려가고 우리만 주인 아주머니의 초대로 2층엘...(차ㅡ암 고왔던 마흔 정도의 아주머니와 여자 꼬맹이 하나가 전부이던 식구)</p> <p> 나 혼자만 먹었으니 나 혼자만 거나해질 무렵 주인아주머니의 독백 같은 고백의 흥얼거림. 이대를 나왔단다. </p> <p> 그런데 나오면 뭣 하냐고요...</p> <p> ...???</p> <p>남편은 아이가 두어 살, 그러니까 돌이 지나자마자 어느 아가씨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단다.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수소문 끝에 강남의 어느 아파트로 찾아 가 남편을 만났는데 그여인이 당신보다도 더 너무 고와 차마 말 한마디 못하고 고이 그 집을 나왔단다.</p> <p>그래도 1년에 두 번, 오늘 같은 작은 추석 작은 설날엔 남편의 한복을 정성스레 손본단다.</p> <p>행여 그이가 돌아올까 봐...</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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