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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에 살면서
icon 곽종상
icon 2020-06-23 14:52:12  |  icon 조회: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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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에 살면서

곽종상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 한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강산이다.

봄엔 진달래, 철쭉이 온산을 곱게 단장하고, 여음엔 녹음, 가을엔 단풍, 겨울엔 또 눈꽃이 별천지를 이룬다.

이 좋은 땅에 자란 식물 또한 특이하다. 혈액 순환을 돕는 약은 은행나무 잎에서 나오고, 진통제 아스피린은 버들잎에서 나오는데 세계 어느 나라 것보다 질과 양이 월등하다. 뿐만 아니라 인삼을 비롯하여 온갖 약재와 과일, 채소, 곡물 등 모두 영양과 맛이 우수하다.

이렇게 좋은 환경과 먹거리 덕분인지 사람들의 체능, 예능, 기능도 뛰어나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능올림픽에서는 오래 전부터 우승을 독점해 왔고, 반도체, 핸드폰 등 전자 제품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체육에서도 양궁, 골프를 비롯해 축구, 야구 등 특출한 선수가 많고, 예능에서도 음악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세계를 온통 주름잡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일찌기 인도의 시인 ‘타골’은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다. 어찌 동방 뿐이랴. 세계의 등불이 되고 있다. 

이렇게 신명나는 일이 많은 것과는 달리, 매우 불행한 일도 있다. 같이 오순도순 살아야 할 가족이 헤어진 채, 70년을 눈물로 지새고, 지금도 임진각에서 북쪽을 애타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백세의 두 노인이 죽기 전에 부모님 산소 앞에서 사죄의 인사라도 드려야 죽을 때 눈을 감을 수 있겠다며 통곡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봤다.

이 좋은 세상, 이 좋은 땅에 살면서 왜 이런 한스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한을 풀어 준다면서 백 명, 이백 명씩 추첨으로 뽑아서 상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을 풀기는커녕 더 깊은 한을 남기고 있다. 2박 3일 동안 만난다고 하면서도 잠간씩 만나 부둥켜안고 우느라 심중 대화도 못하고, 다시 헤어져 따로 가서 자고, 또 잠시 만나 식사만 하고 헤어지고, 그러는 사이 서로 전화와 주소를 적어서 주고받기는 했지만 전화도 편지도 허용되지 않고 있으니... 더 쓰라린 아픔만 남을 뿐이다.

이것이 과연 아픔을 덜어주는 만남일까. 감옥살이 하는 죄수들 면회보다 못한 한스런 만남이다. 두 밤을 각자 다른 호텔에서 재우지 말고, 한 이불 속에 같이 자면서 실컷 몸을 부비며 그동안 쌓였던 한을 풀도록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게 하는 게 사람의 도리 아닌가. 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가혹한 형벌을 받으며 평생을 살게 하는가.

앞에서 우리가 세계의 등불이 되고 있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가당치 않은 말이다. 등불은 어두운 곳을 밝혀, 잘못 가는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넘어진 사람은 일으켜 주고, 시궁창에 빠진 사람은 손을 잡아 끌어올려 주어야 한다. 이것은 체능, 예능, 기능과도 상관없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시궁창으로 밀어 넣고 있다. 우리는 그걸 구경만 하면서 70년을 보내고 있다. 등불 노릇은 고사하고 켜져 있는 불을 끄고, 못 본 체 하고 있다.

금수강산 좋은 땅에서 좋은 공기, 좋은 먹거리를 먹고, 마시면서 똑똑하고 재주많은 우리가 왜 이렇게 부끄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금수가 비단에 수를 놓은 게 아니라 짐승과 같은 금수(禽獸)들의 강산이 되어가는 것 같아 겁이 난다.

 

곽종상 ; 대구 남구 큰골길 200 보성청록타운 101-1401호

(010-3481-6898)

 

2020-06-23 14: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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