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글마당

시니어 글마당 시니어매일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는 신문입니다. 참여하신 독자께는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아카시아 사랑
icon 이화진 기자
icon 2019-05-10 19:24:20  |  icon 조회: 366
첨부파일 : -

                                                           아카시아 사랑

  싱그러운 햇살에 눈이 부시다. 가까이 다가가면 실타래 같은 꽃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모습에 홀릴 것만 같다. 꽃봉오리가 벌어질 무렵, 새벽 등산을 하러 오르는 고개에 이르면 향긋한 냄새에 정신을 빼앗긴다. 키 큰 아카시아나무가 무리지어 있는 그곳으로 운동 겸 향기를 맡고 싶어 야간에도 산길을 오를 적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아카시아에 얽힌 추억이 떠오른다. 잎자루를 쥐고 동무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사람이 엄지로 중지의 손톱 부위를 힘껏 눌러 있다 중지를 튕겨 잎을 훑어냈다. 잎을 먼저 모두 따낸 사람이 잎사귀를 따내듯이 중지로 상대방의 이마나 머리에 꿀밤 침을 놓았다. 손가락의 손톱부분이 근육을 내리치면 조금 아픔을 느낄 정도였으나 두 세 차례 반복할 적도 있었다.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잊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동요 ‘고향땅’이다. 일흔을 몇 해 남기지 않는 지금도 아카시아 꽃이 피어 있는 길을 걸으며 그 노래를 부르노라면 소 몰고 다니던 들길의 고향 사람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제는 추억과 현실의 꽃으로 그 어느 꽃보다 가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아카시아는 달콤한 꽃향기가 무색하게 시골에선 땔감으로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가지에 촘촘히 붙은 가시는 말라 있어서 그곳에 불이 붙으면 생가지가 쉽게 타 들어갔다. 땔감을 장만하기 위해 밑둥치 부분을 낫이나 톱으로 잘라 토막을 내려다 가시에 찔려 피가 나거나 가시가 손에 박힐 적이 있었다. 파리똥만한 크기의 가시가 손에 박혀도 아픔을 느꼈다. 그럴 땐 바늘로 파내거나 박힌 부위의 살을 헤집어 가시가 드러나면 두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짜냈다.

 굵고 긴 줄기는 짧게 잘라 쪼개고 가늘고 긴 줄기는 토막을 내어 밥을 짓거나 쇠죽을 끓이던 시절, 땔감으로 안성맞춤이었으나 아카시아를 좋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 몇 해 전, 한 일본인이 이 땅에 처음 심었다는데 이는 아카시아를 퍼뜨려 소나무가 살아남지 못하게 하여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소년시절, 그런 말을 듣고서 사실인지 꾸며낸 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사 소나무의 자람을 방해할 의도로 심어졌다 하더라도 아카시아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그런 뜻이 아니었더라면 순전히 반일감정을 부추기려고 퍼뜨린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소문과는 달리 척박한 땅에서도 번식이 잘되기에 홍수가 나면 산사태를 막기에 적합하여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에 의해 심은 면적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산야의 이곳저곳 풍성하게 피어 있는 아카시아 꽃을 보며 이 땅에 자라는 나무의 가치를 떠올려본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나무들 가운데 열매, 뿌리, 줄기, 꽃, 향기 등을 놓고 볼 때 어느 한 가지 라도 쓸모없는 나무가 그 얼마인가. 눈보라 속에 피는 매화는 강인함과 그 열매의 유용성을 크게 지녔을망정 천지를 진동시키는 향기는 네 꽃향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수많은 화목 류(花木 類)들이 가지지 못한 게 네 꽃에 있으니 이는 네 특유의 진한 향과 꿀샘이리라. 그러기에 꽃이 피어있는 동안 벌들이 가장 빈번히 찾아드는 식물이 너 외에 또 있을까.

 벌들이 네 향에 빠져들 듯이 사람들도 너의 향에 쉽게 매료된다. 가까이 가면 어느 꽃보다 달콤한 냄새가 진동한다. 허브의 향도 사람을 매혹하지만 네 꽃처럼 흔치 않다. 연이어 피는 밤꽃 내음도 너의 향에 견줄 수 없다. 꽃이 다 져갈 무렵이면 내겐 남은 오월을 깡그리 잃어버린 기분이다.

 그러기에 도회지 변두리나 시골의 산야에 피어있는 너를 무심히 지나치고 싶지 않다. 이 강산의 날씨가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사계절을 온전히 지탱하여 소나무를 푸르게 지켜줄 것인가. 곳곳에 아카시아라도 무성히 자라고 있기에 봄, 여름의 산야는 푸르름이 한결 더하지 않는가.

 아카시아는 벌을 부르고 사람을 매혹하는 그 향뿐만이 아니다. 그 속성屬性은 다른 나무에 비해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며 병이나 해충에도 잘 견뎌낸다. 뿌리는 땅 속 깊이 파고들지 않고 옆으로 잘 뻗어 난다. 뻗어난 뿌리줄기에서 새움이 돋아나 얼마 안 있으면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거친 땅에서도 왕성한 번식력으로 자생하는 아카시아야 말로 온갖 고난을 딛고 꿋꿋하게 일어서는 민초의 모습이리라.

2019-05-10 19:24:20
180.71.234.14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