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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있는 행복
icon 유병길
icon 2020-07-13 20:15:58  |  icon 조회: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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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걷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모른다.

송아지는 태어나고 5~10분이면 일어나고 걸어서 엄마소의 젖을 찾아 빨아먹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은 태어나고 일 년 가까이 우는 것밖에 못한다. 빠르면 첫돌 전에 걷고 늦으면 첫돌이 지나고 몇 달이 더 지나야 걷기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당연히 걷는다고 생각하지 걷는 행복감을 알지 못한다.

처음 담당 교수의 진료를 받았을 때 수술을 하면 성공 확률은 100%지만 혹시 잘못될 확률도 있다는 말을 믿고 수술을 결심하였다.

대구 경북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당초 협착증 수술 예정 날짜보다 사십 여 일 늦게 입원을 하고 이틀 후인 4월 22일에 허리를 15cm 정도 절개를 하고 협착 된 요추 4, 5번 사이에 인공 뼈를 넣고 나사못 4개를 박아 교정하는 요추 유합 수술을 하였다. 4시간 만에 병실에 돌아왔을 때 무통 주사액이 들어가지만 통증이 심하였다.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지만 금식 중이라 물을 먹을 수 없어 스프레이로 입과 입술에 뿌리며 참았다.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담당 교수가 회진 와서 다리를 움직여 보라하고, 점심에는 죽이 나오니 먹고 걷는 연습을 하라고 하였다. 옆으로 돌아눕기도 통증 때문에 힘든데 일어나고 걸을 수가 있을까? 침대를 세워서 먹여주는 죽을 받아먹고 빨대로 물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세 시쯤 간병인의 도움으로 일어나 앉았다. 수액 거치대를 잡고 일어나 허리 보조기를 차고 거치대를 밀며 50여 미터를 걸었는데 어지러워 병실에 들어와서 누웠다.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소변은 소변 줄을 타고 흘러나오지만,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한다면 멀쩡한 정신에 누워서 큰 것을 어떻게 볼까? 수술 전에 걱정하였는데, 걸을 수 있으니 혼자 화장실 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 일째 아침 담당 교수가 소변기 수액기를 다 뗀다고 하시며 걷는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오후에 소변기 수액기 무통 주사관을 떼고 나니 날아갈 것 같다. 부축을 받고 일어나 허리 보조기를 차고 간호사실을 한 바퀴 돌았는데 2분이 걸렸다. 통증이 심할 때는 2~3분을 못 걸었는데, 두 바퀴를 돌아도 발바닥과 엉덩이 저린 증상이 없다.

사 일째는 간호사실 세 바퀴를 돌아도 통증을 못 느꼈다. 수술이 잘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져서 두 팩 수혈을 받았다. 입원하고 15일째 퇴원을 하였다.

지난 2월 하순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올 때 혹시나 하여 고향으로 피신을 하여 오십 여일 있었다. 퇴원하면서 또 고향 상주로 갔다.

수술하고 한 달 동안은 매일 삼십 분 정도 걷는 운동을 하였다. 할아버지가 옛날에 농사일을 하실 때 매일 새벽에 각골, 기말기, 말바탱이, 새보장, 이시내 못 밑 논을 한 바퀴씩 돌면서 논물과 벼의 상태를 돌보셨던 우리 논을 나도 찾아 다녀 보았다. 경지 정리 등으로 논의 형태는 다소 변경되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바라보던 수리 불안전 천수답에서 소의 힘을 빌리고 직접 힘들게 농사를 짓던 그때의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매일 열심히 걷는 운동을 하였다.

중학교 삼 년을 10km을 걸어 다녀서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였다. 육군 부대에서 하던 행군도 즐겼고, 산악회에 가입하여 많은 산을 등산하였다. 상인동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토요일은 등산화를 신고 퇴근하며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달비골 원기사를 지나 앞산 정상에 올라 안일사로 내려와서 대덕식당에서 선지국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갔었다. 2~30분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정년퇴직하면서 협착증이 심하여 걷기가 힘들었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의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으면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나중에는 효과가 떨어졌다.

모임 장소에 갈 때는 도시철도, 버스 노선을 사전에 검색하고 출발을 하여야 걷는 거리를 줄일 수가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통증이 오면 의자가 없어도 도로가 경계석이라도 앉을 수가 있지만, 비 오는 날은 앉을 수가 없어 더 힘들었다. 걸을 때는 어디에 의자가 있나 살피게 되었다. 버스 정류장 의자, 25시 편의점 의자를 많이 이용하였고, 점포 식당 앞에 주차하지 못하도록 놓은 의자에도 많이 앉았다. 수술하기 직전에는 정말로 걷기가 힘들었다. 제일 심할 때는 2~3분을 걷기가 힘들어 앉을 의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통증이 왔으나 앉을 곳이 없어서 조금만 더 걷다 보면 발바닥에 이어 엉덩이가 저려오고 더 심하면 엉덩이가 마비되어 괄약근이 풀려서 뭔가 새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수술을 결심하였고 수술을 하였다.

두 달째부터는 매일 한 시간 정도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 통증 없이 걸을 수가 있어 도시철도 역까지 걸어가고, 시장 볼일을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 다른 곳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올 때는 내리는 도시철도 전 역에서 내려 한 시간 정도 두류공원을 걷는 연습을 하며 집으로 오곤 한다. 기분은 두 시간, 세 시간을 걸을 수가 있을 것 같지만, 무리하지 않고 차츰 걷는 거리를 늘리며 허리 근육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내가 망설이다가 수술을 하여 걸을 수 있는 행복을 찾은 것처럼, 코로나19 백신도 빨리 개발하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지구촌이 행복하였으면 좋겠다.

지금 꿈이 있다면 이십 여 년 전 겨울에 등산하였던, 한라산을 다시 한 번 등산하여 보고 싶다.

2020-07-13 20: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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