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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설 풍속도
icon 우정렬
icon 2020-02-03 14:08:50  |  icon 조회: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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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렬
부산시 북구 화명신도시로 70, 107동 1301호 010-6215-7526) 

올해도 어김없이 설이 지나가고 또다시 새로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음력으로 지내는 구정을 쇠어야 비로소 띠도 바뀌고 실제 나이도 한 살 더 추가가 된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이 장만해 주신 색동옷을 입고 새 고무신, 새 양말로 갈아 신고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듣던 설날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벌써 50여 년 전의 일인데 설날 새해 첫날에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설빔으로  단정하게  차려 입은 뒤 큰방에서 기다리고 계신 조부모님과 부모님께 6남매가 모두 모여 세배를 드리면 할아버지께서는 "귀여운 손주들이 다 모였구나. 다들 건강하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심부름도 잘 해야 하느니라." 라고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올해도 건강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시키는대로 잘 하고 형제끼리 우애있게 지내며 늘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는 덕담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이제는 모두 다 돌아가시고 어느 새 내가 60대를 넘어서 자식들에게 세배 받고 덕담하는 나이가 되어 격세지감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는 준비한 떡과 과일 ,감주 등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큰집에서 지내는 제사에 다시 참가해  어른들 따라  수 차례에 걸쳐 절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에는 자녀나 손주들이나 세배를 하고 나면 세뱃돈 받으려고 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부모들도 아예 사전에 평소에 아껴 두었던  돈을 봉투에 미리 담아 건넨다. 그래야 자식이나 손주들도 잘 따르고 존경한다니 참으로 돈의 위력이 대단함을 실감나게 하면서 한편으론 씁쓰레하기도 하다.

아예 젊은 세대들은 명절에 얼마나 용돈을 받을지 예상까지 하고 실현하기 위해 억지로 어른을 찾아 절하기도 한다니 세배의 순수성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설을 비롯한 명절이 되면 너무 바쁘고 가족들과 제대로 오순도순 이야기할 시간조차 넉넉하지 않아 서글프다. 보통 자녀들이 설 하루 전에 내려와 설 차례를 지내고 나면 각자 거주지로 가기 분주하다. 모처럼 만난 가족임에도, 그리고 연휴가 4, 5일이나 됨에도 늦게 와서 일찍 가는 문화가 새로이 형성되어 나이 든 부모님을 섭섭하게 한다. 물론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어렵고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도  많이  받겠지만 그래도 일년에 겨우 두 번 정도 만나는 명절에도 이토록 시간에 쫒기며 가족간에 윷놀이, 고스톱,  제기차기도 한번 못하고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서글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다가 명절이 되어 찾아와 그간 본의 아니게 흩어져 살던 부모형제와 친척들을 만나 못다한 정담을 나누고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나눠 먹는 좋은 기회로 아늑하고 포근하며 따뜻해진 분위기가 자녀들이 가려는 순간 갑자기 서글프지고  서운해져  버린다.

부모님들은 오랫만에 피붙이를 만나 반갑기 무섭게 눈코 뜰새없이 바쁜 설 준비와 차례 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막상 자녀와 손주들이 간다 하니 무슨 놈의 세상이 이리도 각박하고 삭막한지 속으로 한탄을 한다. 그래도 겉으로 자식들에게 내보이기는 싫어 설 음식과 참기름, 고추, 깨, 땅콩, 고구마, 감자 등 힘들게 지은 농작물을 있는대로 가득 챙겨 자식의 차에 실어 준다. 자식들은 정말 자신의 앞가리개 하기도 쉽지 않아 부모님에게 용돈이나 차례비도 넉넉히 드리지도 못해 불효함을 느끼는데 이처럼 힘들고 피땀흘려 뼈빠지게 지은 농작물까지 있는대로 다 주려는 부모의 은혜에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런지 답답하고 서글픈 심정이 된다. 정말 자식을 낳은 죄(?)로 부모님은 그토록 자식들에게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 하는데 과연 자식들은 이에 얼마나 보답하려 하며 노력할까. 드디어 가득 짐을 실은 승용차가 고향을  떠나려면  부모님은  섭섭하고  안타깝지만 자식들이 편하게 하자는대로 헤어질수 밖에 없는 현실이 더욱 야속하다. 배웅을 나온 부모들은 피붙이들이 탄 차가 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대며 아쉬움을 달랜다.

그나마 이런 명절이 있기에 내 고향과 뿌리를 알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살아계신 부모친지들을 찾아뵙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잖아도 효도와 경로 사상이 갈수록 쇠퇴하는 시대에 명절이 유지 계승됨으로 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지 않나 싶다. 세태가 아무리 바뀌어도 나를 낳아 길러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비록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차례를 통해 생전의 부모님과 조상들을 추모하고 되새겨보는 일이야말로 뿌리를  찾고  가문이 이어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명절 문화는 시대에 따라 약간씩 겉모습은 달라져도 분명 역사적, 민족적, 문화적 가치가 있고 또한 본질은 같으므로 보존, 유지되어져야 하리라 본다. 

(부산시 북구 화명신도시로)

2020-02-03 14: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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