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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뭐지요 ?
icon 김교환 기자
icon 2020-01-19 19:55:38  |  icon 조회: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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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뭐지요?

 

아내가 금년 들어서 허리통증을 호소하더니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져서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원래 건강 체질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지금까지 별일 없이 잘 지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당한일이라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내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오게 된 사실이다.

지금까지 집안일은 몽땅 아내 몫이었기 때문에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겨우 라면을 끓이는 정도였으니 이집 저집 외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가하면 병원엘 들락거리며 밤마다 빈집을 혼자 지키면서 아내의 빈자리가 이토록 큰 것인 줄을 실감하게 되었다.

10일간이나 입원을 해서 시술을 받고 퇴원을 했지만 곧장 회복되는 것이 아닌 만큼 활동이 불편하여 겨우 밥하는 일과 반찬 만드는 일 외의 집안일은 몽땅 내차지가 되고 말았다.

자식이라고 아들 형제를 두었지만 각각 서울과 포항에서 가정을 갖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아무런 도움이 될 수도 없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갑자기 바뀐 내 생활패턴에 길들여지지 못해 서로 간 말없는 불만이 쌓여가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자 현실을 잊고 원래 길들여진 버릇대로 나도 모르게 거실로 나와서 TV뉴스에 정신을 쏟고 있는데 아내가 나오면서 하는 말이 “참 너무하네요, 피가 안 섞여서 그런 가요?”

나는 순간 ‘피’라는 말에 울컥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부부일심동체를 가슴속에 묻어 둔 채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내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러나 곧장 후회가 된다.

불편한 몸으로 아침식사 뒤처리까지 하자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으로 후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둘만의 생활이 벌써20년이 넘었지만 아내의 성품이 워낙 내성적이고 매사에 순종하는 자세가 몸에 배인 터라 이렇다 할 부부싸움도 없이 잘 지내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별일 없이 잘 지내온 것도 함께 교직생활을 하면서 집안일은 전부 아내의 몫이었지만 결국 무조건 순종해온 아내의 희생의 산물이었다.

언젠가 아내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당신에게 뭐지요?”

물론 뒤에 숨겨진 말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당신 뒷바라지만 해오지 않았느냐로 사실 바른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 사람이 만나서 45년을 보내는 동안 결혼기념일 한번 챙겨보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유교문화의 그늘에서 자란 우리세대는 아직도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 뿌리 깊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제 바깥일이 끝난 내겐 아무런 할 일이 없어졌지만 아내에게 집안일은 그대로인데 여기에 몸까지 불편하게 되었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정치꾼들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소통이 안 되어서 문제라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내 집안을 돌아보며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나는 아내 앞에서는 내 말이 법이요 다 맞으니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집안 대장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생각할수록 내 자신이 초라하고 못나 보이는 소위 간 큰 남자였다는 자책감만 생긴다.

우리속담에 입술의30초가 가슴의 30년이란 말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라고 한 너무도 유명한 말이 이 순간처럼 가슴에 깊이 와 닿은 때도 없다.

몇 번이고 되씹어보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내가 잘못 했네요”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또 한발 늦었구나.”결국 나는 늘- 아내에게 지고 마는 못난 사람으로 “여보 미안해요” 그 말도 입 밖으로 내 보내지 못한 채 시계가 벌써 12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내게 2-3시간의 긴 참회의 시간이 지나간 셈이다.

이제부터 당신과 우리 서로 이야기 많이 나누면서 소통 합시다.

그리고 집안일도 나누어 하구요. 작심3일이 아니길 또 한 번 다짐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는데 피가 대수인가요?

배우자에 공감해 주지 않으면서 소통 안한다고 불평하고 있다면 자신의 내면부터 들여다보라는 어느 교수의 “부부의공감과 소통”이란 책의머리글을 떠올려 본다.

2020-01-19 19: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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