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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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나를 기다리며
icon 한봉수
icon 2020-01-03 15:25:45  |  icon 조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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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설날이 내일로 다가 온 날이었다.
얼음지치기에 바빠서 방학 숙제는커녕, 훌쩍이며 내려오던 콧물을 훔치느라고 얼룩빼기 황소가 된 손등을 얼음 밑으로 흐르는 차가운 물로 씻고 기다린다.
지난 추석 때에 “설날에 꼭 다시 오꾸마.” 하고 약속한 누나의 말이 왜 오늘 아침에야 생각났는지 마음 한구석이 억울한 면도 있지만, 당장 급한 마음에 씻는다는 것보다 아예 미운 땟자국을 깎아내었다는 말이 옳을 만큼 딴에 열심히 씻고 빡빡이를 겨우 면한 머리칼도 행여나 흩어 질까봐 머리칼도 손질을 하고 동구 밖을 돌아 나와 신작로가 바라다 보이는 양지바른 산자락에 붙어있는 나지막한 소나무 옆의 옴팍진 구릉을 바람막이로 삼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녀석아 아침밥이라도 먹고 나가서 기다려라.” 하시는 엄마의 말씀을 듣지 않고 냅다 달려 나온 것이 점차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차 배고픔도 느껴지고 추운 기운도 슬금슬금 덮쳐오니 천천히 챙겨서 따뜻하게 입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이제라도 집으로 들어가서 형의 헐렁한 옷을 바람박이 외투인양 더 껴입고 다시 나올까도 생각이 들지만, 그러다가 그사이에 와 버리면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기다린 것을 알리지도 못하고 말 것이란 걱정으로 ‘조금만 더 참자 ’를 반복한 것이 벌써 해가 그림자를 길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이제 지겨움도 추움도 잊어질 정도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이제야 멀리서 자갈길을 뒤뚱거리면서 오고 있는 버스는 어제 내린 눈으로 먼지도 내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오고 있다.
문이 열리고 엄청 많은 사람들이 빨갛고 노랗고 파란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치장을 하고 양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내리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앞서 내린 사람에게 아직 내리지 못한 사람이 짐 보퉁이 아니 선물 보퉁이를 던지듯이 내려 주고 하는 북새통을 피우고 나서야 버스는 자기의 갈 길을 떠나갔다.
그러나 없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또 찾아봐도 마중 나온 나의 예쁜 누나는 그곳에 없었다. 
나는 행여나 누가 볼까봐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참아 보지만 볼을 타고 흐르는 무엇이 차가움을 느끼게 할 때 마침 
“아이고 이 녀석아 집에서 기다리지 뭘 할라고 이 추운 날씨에 나왔노? 응.” 하면서 너무 추워서 감각도 없는 양쪽 귓불을 감싸 쥐고 안아 주는 사람은, 누나는 맞지만 나의 누나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누나처럼 항상 따뜻한 얼굴로 귀여워 해 주고, 맛난 것도 주고 가끔은 업어 주기도 하는 누나다. 
무서운 할아버지집에 살기 때문에 이 누나에게 엿이라도 얻어먹으러 가고 싶지만 어지간하면 참아야 할 정도로 자주 안겨보지도 못한 먼 친척 누나였다.
멋쩍어서 살짝 몸부림을 치면서 벗어날려는 나를 더욱 꼬옥 안고는 영 놓아주지 않을 양인지 야무지게 붙들고서는 당신의 그렇게도 예쁜 분홍빛 쉐에타 저고리 품속으로 나의 두 손을 끌어당겨 넣으시고는 
“ 엄마는? 할배는? 할매는? 아재는? 누구 아지매는? ......”
너무나 빠르게 엄청 많은 사람의 안부를 물어오는 통에 나의 머리가 아플 정도였었다. 정작 “우리누나는 안와요?” 하고 묻고 싶은데  나의 마음도 모르시는지 지겹도록 백여 호나 되는 우리 집안의 어른들의 안부를 묻고서는 
“춥다. 어서 들어가자 녀석아.” 할 때는 정말 나의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에 곤두박질치는 듯한  듯하였다. 
물론 이 누나도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집안에서 귀염둥이였던 나를, 말은 거칠게 하지만 매우 살갑도록  예뻐해 주셨기 때문에 이 누나를 나도 매우 따르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은 아니었다.
이 누나가 서운해 할까봐 말은 못하고 잡힌 손목을 뿌리치며 “먼저 들어가요.” 하면서 기어코 터진 나의 울음을 당황해하시면서 
“와? 와 우노? 응?” 하시더니 한참 후에야
“ 아이고 자석아 너거 누나 기다렸구나.  너거 누나는 나보다 먼저 출발은 했는데  중간에서 버스가 고장이 나서 고쳐갔고 올 긴데. 우야꼬!” 하시드니 
언제 올 것인지도 모르는 예쁘고 자랑스러운 나의 진짜 누나가 타고 올 고장 난 버스를, 이 누나는 당신의 엄마 아빠를 만나고 싶지도 않은 양 나의 두 손과 볼을 만져 주시면서 해가 다 넘어가고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 할 때까지 같이 기다려 주셨다. 
그 누나가 팔십 고개를 겨우 넘기시고서 무엇이 그렇게 고향에 오고 싶게 만들었는지?  합천 댐 건설로 집안 부족이 흩어지고 어른들도 하나 둘 씩 하늘로 가시고 텅 빈 고향 마을을 설날을 코앞에 두고 찾아오실까? 
꽃가마도 아닌 어릴 때 나의 손등 때자죽을 닮은 까만 색깔의 마지막 호사의 리무진을 타고오시면서 흰 머리 철부지 동생을 왜 이렇게 울리고 계실까?
(경북 고령군)

2020-01-03 15:25:45
59.23.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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