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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말이 통해야지!
icon 김용식
icon 2019-12-10 17:44:46  |  icon 조회: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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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한다는 말은 말의 뜻을 못 알아듣거나 서로 의견을 달리해서 소통할 수 없을 때를 말한다. 하지만 진짜 말이 안 통하는 경우는 이런 경우일 것이다. 지난 가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할 때였다. 낮선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로 일행 여섯 명(세 부부)은 설렘으로 길을 나섰다.

먼저 렌터카에 기름을 넣기로 하고 주유소에 들렀다. 셀프 주유소였다. 참으로 당황스럽게도 이 차에 휘발유를 넣어야 될지 경유를 넣어야 될지 모르겠다. 차량등록증 같은 서류를 찾아 봤지만 그림 같은 낯선 글씨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더 모르겠다. 주유소 사무실 지키는 사람에게 "헬프 미!"를 외쳐봤지만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고, 이방인에겐 관심도 없다. 기다리다 기름 넣으러 오는 차를 잡고 도움을 청해본다. 이 또한 불통이다. 이쯤 되니 당황해서 앞이 캄캄했다. 차량 몇 대를 보내고 주유하러 들어오는 또 다른 한 사람을 잡고 부탁을 해본다. 손짓 발짓과 영어와 한국말까지 총동원하여 우리의 뜻을 전달했다. 보닛을 열어보고 냄새와 엔진 소리를 들어보고 결론은 휘발유로 판단 받았다. 다음은 얼마나 넣어야 될지 물어오는 것 같다. 첩첩산중이다.

“풀~~. 가득. 만땅. 에이! 이빠이….” 도대체 못 알아듣는다.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러나 러시아 덩치 큰 젊은 남자인데 말이나 될 법한가? 현금을 꺼내들고 마음대로 하라는 시늉으로 겨우 기름을 채워 넣었다. 휴∽ 첫째 임무 완료. 감사하다는 표시를 연발하고 주유소를 벗어나 한가한 도로를 콧노래 부르며 달렸다.

다음은 숙소를 찾아 간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사전에 예약해 두었다. 구글에 주소를 입력 했으니 지시대로 어렵지 않게 동네 부근까지 잘 찾아왔다. 그런데 부근에서 어느 건물인지 찾지를 못하겠다. 숙소를 바로 코 앞에 두고 학교 건물의 경비 아저씨에게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 40여 분을 헤매다 겨우 찾았다. 나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봤지만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나라도 드물었다. 숙소를 겨우 찾고서야 왜 헤매었는지 원인을 알아본 즉, 숙소 주인이 찾기 좋으라고 동네 입구에 있는 큰 건물 주소를 알려 줘서 골탕을 먹은 것이었다. 휴~~ 어쨌든 베이스캠프를 찾았으니 살았다. 짐을 풀고 거실에 주저앉았다.

여기가 어릴 적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각했던 동토의 땅, 러시아였다. 우리가 이런 여행을 즐기는 것도 타고 난 탓이려니. 겨우 영어 몇 마디 할 수 있는 언어 능력으로 러시아 한 모퉁이를 뒤져 보겠다고 나섰으니 다들 겁도 없는 돈키호테들이다. 부엌 한 쪽 벽면에는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눈길을 끌었다. 우리도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뭐라고 쓸까? 일행 중 한 사람이 'carpe-diem!'(까르페디엠) 이라고 적고 아래에 '멋진 꽃중년'이라고 적는다. 모두들 동의하고 박수를 친다. 현재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오늘을 즐기자’ 라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글귀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우리나라의 남쪽 땅 끝 마을쯤 되는 ‘토비지나’곶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우리는 내일을 걱정하며 잠자리에 든다. 아니 사실 걱정이라기보단 내일의 새로운 모험 길을 기대하며 잠들 것이다. 내일은 과연 말이 통할까?

2019-12-10 17:44:46
59.23.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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