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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 형
icon 김홍열
icon 2019-12-02 18:18:54  |  icon 조회: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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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아버지의 직장 이동으로 대구에서 다니게 되었다. 대구 영신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에 가려면 칠성시장에서 버스를 내려 속칭 푸른다리(경부선 철로) 밑으로 약 300m 정도 걸어가야 했다. 학교 후문으로 바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 당시에 푸른다리 밑에는 넝마주이(거지)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약 50명 정도 쯤 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초였다. 학교에 가던 길에서 넝마주이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쓰레기를 마구 털기에 자제를 부탁하였으나 막무가내였다. 거기서 한바탕 싸웠다. 그렇게 넝마주이들을 혼내주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다. 그들이 아침마다 우리의 등굣길을 막는 것이었다.

그것이 겁이 나서 약 3배나 더 걸리는 길을 둘러 다니게 되었다. 강남약국 앞에서 하차하여 정문으로 오는 길이다. 처음에는 별로였지만, 3, 4개월을 다니다 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게 힘든 것이었다. 학교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아닐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들에게 먼저 협상을 제의했다. 협상은 이루어졌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한 학기 동안 도시락을 그들에게 상납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좀 더 편하게 다니기 위해 생각없이 약속한 것이었는데 3개월 정도 되니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었다. 배도 고프고 집에서 부모님이 알까봐 걱정도 되었다. 거짓말을 해서 용돈도 많이 받아내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사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학기 말이 다 되어서 넝마주이 대장을 다시 찾아가 사정을 했다. 좀 봐 달라 했더니 의외로 선선하게 용서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들과 친하게 되었다. 집에 남은 간식을 가져다주는가 하면 용돈도 조금씩 주며 친해졌다.

고3이 되니 대학에 가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학교로 학원으로 뛰어다니기 바빴다. 나는 대학을 예능계열로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형님의 만류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 시내 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그 후 1년쯤 지났나. 졸업증명서를 떼기 위해 고등학교를 다시 찾게 되었다. 가는 길에 다시 그곳에 들러 넝마주이 대장의 안부를 물었다. 몸이 많이 아파서 시립요양시설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잠시나마 마음이 슬펐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환경 자체가 안 좋았으니 필연적인 결과였는지 모른다. 좋지 않은 인연으로 만났지만 나중엔 의리를 나눈 형과 동생이었는데…. 별 소용없을 기원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부디 쾌유하시라고.

2019-12-02 18: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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