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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향기로운 삶
icon 장명희 기자
icon 2019-03-17 14:10:32  |  icon 조회: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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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삶

유년시절 길을 걷다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에 조글조글하게 수놓인 주름살을 보면 조금은 거부감이 일어났다. 얼굴에 얼룩덜룩한 저승꽃하며, 왜 저렇지? 세상을 너무 몰랐던 탓일까.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좀 서툰 걸음걸이를 했던 지난날들이 기억난다. 세월이 참 많이 흐르고 많이 변했다. 나의 이마에도 벌써 자신의 허락도 없이 차츰 주름살의 터를 잡는 듯하다. 거울을 보면서 가끔씩 비싼 화장품으로 다리미질을 하듯이 힘을 주면서 밀어보지만, 그 자취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내 삶의 진지함이 얼굴에 묻어나는 것으로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드리기로 했다. 모든 자연의 이치는 순리가 있듯이 인정하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친정어머니는 어느덧 90세를 맞이한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작고 큰 풍파는 없으려 만은, 그래도 든든하게 어머니로써 자리를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황혼에 접어든 자식에게 그늘받이가 되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짙은 어둠속에는 불빛이 너무 선명하게 비추어주듯이, 어머니는 나에게 아낌없이 비추어주는 불빛이다. 길이 나지 않는 척박한 땅에 어머니께서 먼저 거칠은 덩굴을 헤치고 갔기에, 나는 뒤따라 쉽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편안한 삶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걸으면서 어머니를 통하여 닮은 생각을 얻어 오면서 좀 더 빨리 세상사는 법을 터득할 것 같다. 어느 유명한 시인의 “가지 않는 길”이 생각난다. 다른 길을 가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딸이 될 것 같다. 어머니의 길이 내 삶에 든든한 의지처가 되었기 때문에.

50대 중반의 나이에 건강상 이유로 결혼하지 않는 딸이 걱정이 되는 것 같아 위로해 드리기 위해,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의 침실에 문안을 드리러 간다. 몇 십 분 동안 서로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즐거웠던 이야기 또는 슬펐던 이야기를 집어가면서 때로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버렸다. 어머니께서는 말동무가 되어 주셔서 너무 고마워하는 모습이었다. 연세가 많으면 젊은 사람들과 대화도 잘 통하지 않고 격이라는 “담”이 있어서 약간의 거리감이 생기는 것일까. 잠시 짧은 대화로 벽을 허무는 기분이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는 모든 것을 껴안아주는 넓은 확 트인 마음의 공간이라 여겨본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함께 계시기만해도 따뜻한 체온으로 저절로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 막내로 자랐다. 어머니께서 젖을 일곱 살까지 먹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약도 발랐지만 식성이 좋아서 어머니께서 발라놓은 약까지 빨아 먹었다고 하셨다. 지금이나 어렸을 때나 식성은 참 좋았던 모양이다. 때로는 모든 자식들이 입을 스치고 지나간 축 쳐진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면서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다. 가끔씩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한다. 어머니의 가슴을 만지면서 마음이 너무 따뜻해져 온다. 누구에게나 이런 마음으로 나누고 베풀고 싶은 넓은 아량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 무릎을 베고 끊없는 무언의 대화로 첫 사랑을 고백했던 생각이 자꾸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어머니의 젖가슴에는 향기로운 나의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 같다. 그 시간이 지금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어머니께서는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셨을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지금도 나의 생각의 끈에는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뿜어나는 삶의 향기로운 진한 채취가 묻어난다. 아마도 마음이 거칠지 않고 온유한 것도 어머니의 가슴과 손으로 통해 배운 자비로운 마음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 향기가 너무나 삶의 보물 상자로 남는다. 언젠가 나도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장성한 자식에게 나의 젖가슴을 내어 주면서 세상을 배우면서 늙어가는 자식이 되도록 가르치고 싶다. 마른 나무 둥치처럼, 아낌없이 태워서 재가 되어 거름이 되도록.

2019-03-17 14: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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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每日 2019-03-19 17:28:35
잔잔한 울림인 줄 알았는데, 가슴에는 큰 파도가 이는 듯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얼굴이 갈수록 희미해진다는 게 갈수록 서럽기만 하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