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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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자
icon 유병길
icon 2019-09-04 13:46:40  |  icon 조회: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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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봄날 엄마는 외투를 벗어 놓고 퇴근을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늦게 나가면서 현관문을 닫으려니 현관 열쇠가 없다. 출근한 남편한테 전화를 하여 현관문을 닫았다. 회사에 가니 외투 주머니에 현관 열쇠가 있었다.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현관 열쇠를 가방에 넣었다. 어느 날 퇴근시간이 다되어 친구가 회사 근처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핸드폰만 들고 밖에 나와서 차를 마시고 친구와 헤어지며 남편을 만났다.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 바로 퇴근을 하였다.

그날 저녁 회사에 도둑이 들었다. 사원들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던 잔돈까지 다 가져갔다. 방학기간이라 현관 열쇠가 꼭 필요하지 않았다. 며칠 후 퇴근하는 엄마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00경찰서입니다. 남편 000, 본인이 000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여권이 있는가 물어서 장롱 속 가방에 있다고 하니, 여권이 들어있던 가방을 훔쳐 온 도둑을 잡았단다. 집에 가서 확인하고 경찰서로 오라고 하였다. 가슴이 다리가 덜덜 떨렸는데, 집 앞에서 남편을 만나 집에 들어가니 장롱속의 옷과 서랍의 물건을 모두 방바닥에 다 내놓아 전쟁터 같다. 경찰서에 가보니 학원 다니는 취업 준비생인데 용돈이 궁하다보니 회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가방 속 주민등록증에서 주소를 확인하고 현관 열쇠를 가져갔던 것이다. 이때까지 엄마는 현관 열쇠가 가방 속에 없는 것도 몰랐다.

 엄마는 젊을 때 회사에 입사하여 무슨 일이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여 열심히 일을 하였다. 능력을 인정받았고 승진에 승진을 하여 일찍 실장이 되었다. 사원들은 엄마를 존경하였고 높은 사람은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엄마를 믿고 무슨 일이든 맡겼다. 일을 열심히 하여 실적을 올리는 만큼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건망증에 시달렸다. 남편과 자식들이 아침에 먼저 나가고 현관문을 닫으려니 현관 열쇠가 없었다. 어제 입었던 옷과 가방을 다 뒤져서 겨우 찾았다. 건망증은 나이가 한 살 한 살 많아지면서 심하여졌다. 엄마는 회사의 책임자라 들고 다니던 손가방도 많았고, 매일 옷을 갈아 입다보니 출근할 때 현관 열쇠 찾기가 힘들었다. 삶의 질이 좋아지면서 차키, 핸드폰까지 갖고 보니, 출근이나 외출할 때 현관 열쇠, 차키, 핸드폰을 찾는데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핸드폰이 없을 때는 집 전화를 걸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현관 열쇠, 차키가 없으면, 어제 그저께 들었던 가방을 다 뒤지고, 입었던 옷 주머니를 다 뒤져야 했다. 출근 시간은 급한데 못 찾을 때 엄마는 화가 났지만 표현을 못하고 속으로 삼키다보니 우울증도 생기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인 남매는 엄마를 위로하는 말을 늘 하였다. 딸이

“엄마 내가 커서 현관 열쇠 차키가 없을 때 엄마 손바닥을 누르면 ‘삑’ ‘삑’ 소리가 나게 하는 리모컨을 만들어 줄게요. 그때까지만 고생하셔요.”

“엄마 나는 ‘현관 열쇠,’ ‘차키’ 부르면 ‘네’ ‘네’ 대답하도록 만들어 드릴게요.”

“우리 딸 아들 고맙다. 엄마가 기다릴게.”

엄마보다 두 살 적은 이모도 건망증이 심하였다. 친정어머니 제사에 참석하였다가 집에 올 때 두 자매가 핸드폰, 차키를 찾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집 밖에 나왔는데 핸드폰 생각이 나면 돌아가서 가져가고, 회사에 출근하여 핸드폰이 없으면 방학 때는 자식들한테 가져다 달라고 부탁 하였다. 저녁에 집에 오면 “엄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엄마를 놀렸다.

어느 날 식탁 위에 예쁜 사각 통이 하나가 있다.

“얘들아 이게 뭐야.”

“엄마의 기억 상자”

“뭐라고 기억 상자?”

“집에 오면 이 상자에 현관 열쇠, 차키를 넣어 두고, 아침에 출근할 때 기억상자에서 가져가세요.”

“와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할게”

며칠 동안 현관 열쇠, 차키를 넣더니 다음부터는 넣는 것 자체를 잊었는가? 또 넣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근무 중에 시간을 내어 핸드폰 가지러 집에 다녀갔다. 엄마 자신이 생각하여도 심한 것 같아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하였으나 정상으로 나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거실에 연기가 자욱하고 어둠속에서 보름달이 보인다.

“저게 뭐야?”

거실의 불을 켜고 보니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가 빨갛다. 뚜껑의 손잡이가 다 녹아 내려 불에 탔다. 손잡이 구멍으로 보이는 주전자 속의 보리 낱알은 붉은 숯 덩이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집에 불이 붙을 것 같은 아찔한 순간이다. 남편이 모임 가고 늦게 온다는 날, 엄마를 집에 일찍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조상님이 도운 것 같다. 엄마는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떨려서 숨을 쉬기조차 힘이 들었다.

건망증이 집에 불이 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남편한테 전화를 하였다.

“여보, 낮에 핸드폰 가지러 집에 왔다가, 가스레인지에 보리차 주전자를 올려놓고 나갔어.(울먹이며) 지금 들어왔는데, 주전자에 물이 한 방울도 없고 뚜껑 손잡이가 다 탔어. 집에 불 날 뻔했어.”

듣고만 있던 남편이

“불은 안 났잖아. 겁먹지 마. 내가 바로 갈게.”

남편의 위로를 받고 보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예전 같으면 버럭 화를 냈을 남편이지만 부인의 건망증과 우울증 원인에 자신도 한 몫을 하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건망증 치료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모임도 못가고 일찍 들어 온 남편한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덮고 울먹였다.

취직을 한 자식들이 결혼하여 엄마 곁을 떠나갔다. 엄마 나이 오십 대 후반에 성질은 급하였지만, 집안일을 잘 도와주던 남편이 급성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별의 충격과 홀로 남은 외로움에 엄마의 건망증 증세는 점점 더 심하여 갔다.

서울 큰 병원에서 건망증 치료를 잘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엄마는 검사를 받아 보기로 결심을 하였다. 휴가를 내고 서울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는 건망증이 심하다.

전문의들의 회의 결과는 엄마의 건망증 치료는 더 진행되지 않게 약을 처방하고, 아들(휴대폰, 차키, 현관열쇠)들에게 엄마의 홍채 칩을 심어서 항상 서로가 바라보게 하는 수술방법을 권하였다. 아들과 10여 미터 떨어져 안보이면 “엄마! 엄마!” 소리가 나게 하는 수술이란다.

최신형 비싼 의료장비를 수입하였기 때문에 수술비가 많이 비쌌다. 혼자 노후를 즐기며 살아가기 위하여 수술하기로 결심하고 아들 삼형제와 같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천정의 둥근 전등에 밝은 불이 켜지고 외과, 안과, 신경과전문의가 수술준비를 하고, 마취 전문의가 주사를 놓으면서 엄마는 깊은 잠에 빠졌다. 엄마의 눈에서 홍채 칩을 어렵게 채취하여 아들 삼형제의 몸에 이식하는 여덟 시간의 대수술을 하였다. 수술은 잘되었고 엄마는 두 시간 후에 의식을 회복하였다. 검사하는 삼일동안 금식하였던 엄마는 미음부터 먹기 시작하여 이튿날 밥을 먹고 삼일 후에 퇴원하였다.

 병원에서 어려운 수술을 받고 첫 출근한 엄마는 그 동안 고생한 사원들에게 점심을 냈다. 고급한식집에서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였다. 엄마는 식사 중에도 친구들의 “퇴원 축하” 안부 전화를 받았다. 식당의 후식은 소화를 도와주는 감주인데 커피를 좋아하는 젊은 직원들을 위하여 고급커피를 주문하였다. 엄마가 계산하기 위하여 먼저 일어나서 계산대 앞으로 가는데, 상 밑에 두었던 핸드폰이 “엄마! 엄마!” 큰소리를 질러 모두가 놀랐다.

“실장님, 입원하셔서 아기 낳고 오셨어요?”

“그래요, 아들 삼형제 낳았어요.”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수술이 잘된 것 같아 엄마는 행복하였다. 시장에서 시어른 기제사 장을 보았다. 계산을 하고 장 보따리만 들고 걸어 나오는데, 가방속의 현관 열쇠, 핸드폰, 차키가 “엄마!” “엄마!” “엄마!”소리를 지르자, 가게 주인이 가방을 들고 “아줌마” 소리치며 달려왔다. 아침마다 찾든 현관 열쇠, 핸드폰, 차키! 이제 일일이 찾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어 엄마는 행복하였다.

시골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이모는 엄마보다 건망증이 더 심하였다. 언니의 수술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거리가 멀어져서 안보이면 “엄마! 엄마!” 소리치는 핸드폰, 차키, 현관 열쇠가 신기하였다. 자기도 수술 받아 걱정 없는 삶을 살기로 하였는데, 수술비가 너무 비싸 당장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일 년 후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신기술이 또 개발되었다. 서로가 바라보다 멀어지면 반응하는 홍채 칩이 아닌 성대에서 음성 침을 채취하여 사용하는 생활용품에 칩을 심는 방법이다. 많이 사용하는 휴대폰, 집 열쇠, 차키, 안경, 은행통장, 등을 들고 병원에 입원하였고 긴 시간 수술을 하였다.

외출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없으면 “휴대폰” 부르면 “네” 대답을 한다.

“안경,” “집 열쇠” “차키” “은행 통장” 부르기만 하면 “네” “네” “네” “네” 신통방통하게 대답을 하여 찾게 된다.

몇 년 후 이모부도 하늘나라로 갔다. 혼자 쓸쓸하게 살아가는 이모하고 같이 한집에서 자매가 정답게 같이 살고 있다. 엄마의 자식들이

“우리가 소리 나는 리모컨을 만들어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려 했는데, 우리의 상상이 현실이 되었어요.”

“그래, 세상은 참 좋아졌다.”

주차장에 내려 왔는데, 가방을 뒤져도 차키가 없다. 다시 올라가서 어제 입었던 코트에서 찾았는데 벙어리가 되었는가? 말을 못한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벙어리가 되었다.

서랍을 뒤지며 새 배터리를 찾는다고 정신이 없는데

“여보 오늘 출근 안 할 거야?”

죽은 남편이 소리를 지른다. 눈을 뜬 엄마는 너무 놀라 어리둥절하였다. 급히 밥을 지어 아이들과 같이 식탁에 앉은 엄마는 수술을 받은 이야기를 하였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보니 꿈속이 아닌 현실에서도 그렇게 될 날이 곧 올 거야. 그때가 되면 수술비가 아무리 많아도 수술하여 줄 터이니, 그때까지 우리 건강하게 삽시다.”

”여보 고마워요.”

“엄마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2019-09-04 13:46:40
59.23.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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